하나님이 인간에게 영광과 능력을 받을 수 있는가?

조회 수 154 추천 수 5 2014.03.25 18:5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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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인간에게 영광과 능력을 받을 수 있는가?


[질문]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아멘.”(계4:11)

상기 말씀을 묵상하던 중에 하나님은 홀로 영화로우신 분이신데 우리들이 기도 드릴 때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라고 할까라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그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우리가 드리는 것을 받으신다는 것은 모순된 말인 것 같은 의문이 생겼습니다. 그러다 오늘 아침 묵상에선 이 본문의 받으시는 것은 우리 성도들이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당신께서 스스로 지으시고 가지신 것에 합당하다는 말씀으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묵상해야하는지 목사님의 가르침을 바랍니다.

[답변]

성경을 아주 세밀하게 읽고 깊이 묵상하는 것 같습니다. 흔히들 쉽게 간과하는 부분에까지 주목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아주 근본적이고도 중요한 내용에 초점을 모았습니다. 성경은 의심을 가지고 읽어야 합니다. 하나님 그분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는 즉, 믿음 자체의 흔들림이 아니라 성경구절의 모호한 부분에 대해 정확히 알고자 하는 탐구심을 말합니다. 그런 의심은 해답을 얻고 나면 오히려 굳센 믿음으로 성숙시켜 줍니다.

당연히 영광과 존귀와 능력은 하나님만 소지하고 계시고 또 그분께만 해당되는 특성입니다. 인간이 어찌 부족하고 불완전하며 심지어 허물과 죄로 오염된 자신의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그분께 바칠 수 있겠습니까? 정확하게 묵상하셨습니다. 그중에도 영광과 존귀는 원론적으로 인간에겐 전혀 해당되지 않는 단어이지 않습니까? 아주 예리한 지적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묵상에서 얻은 깨달음도 설명을 덧붙일 필요가 없을 정도로 정확한 답입니다.

성경묵상은 문법적 분석이 우선  

이런 의심이 들 때는 우선 본문을 여러 번 읽으면서 스스로 해답을 찾으려는 시도를 해보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문법적으로 분석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기록했기에 영적으로 우둔한 인간이 읽으면 언뜻 해석이 어려운 것 같아도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한 자도 땅에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미세하고 정밀한 기록입니다. 다른 말로 완전하고도 명백한 뜻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 당신께서 신자에게 혼란과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를 절대 원하지 않습니다. 의외로 명료한 뜻이 쉽게 드러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본문 혹은 문맥 안에 그 해답이 이미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인용한 구절을 우선 문법적으로 따지자면 하나님이 그것들을 받기에 “합당하다”고만 했지, 누가 드리는지 행위의 주체는 명백하지 않습니다. 아니 그 주체는 없이 단지 수동형으로 표현되었을 뿐입니다. 물론 행위의 주체가 불특정 다수이든지, 혹은 누구인지 쉽게 알 수 있는 경우는 생략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합당하다”라는 동사는 단순히 그럴만한 가치나 자격이 있다는 뜻입니다. 어떤 동작이 일어났는지 안 일어났는지는 불명합니다. 쉬운 예로 큰 업적을 이룬 자를 두고 훈장을 받기에 합당하다는 말은 훈장을 준 행동이 일어나지 않았어도 가능한 표현입니다. 실제로는  훈장을 받기 전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 더 보편적이고 합리적입니다.

둘째로 본문 안에서의 문장 구조와 의미를 살펴봅시다. 인용한 11절은 전체가 복문 구조로 된 한 문장입니다. 앞부분은 주절이고 뒷부분은 종속절로 특별히 앞에서 진술한 내용의 이유, 근거 등을 설명한 것입니다. 따라서 풀어서 쉽게 해석하면 하나님은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을 만한 가치와 자격이 있는 분인데, 그 이유는 하나님이 만물을 당신의 뜻대로 창조했고 또 그 창조한 것을 당신의 능력으로 보존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본문에서 말하는 영광과 존귀와 능력은 일차적으로는 하나님 당신의 것입니다. 확장해서 영적으로 해석하면 당신이 창조한 만물에 당신의 영광과 존귀와 능력이 그대로 다 드러났다는 것입니다. 만물이, 특별히 지금 찬송하는 인간 이십사 장로가 자기들 것으로 바치는 특정한 행위를 한 것이 아닙니다. 단지 모든 피조물에 드러난 아름답고 선한 양상과 행태 모든 것은 오직 하나님 당신의 공적과 능력일 따름이라는 것입니다.

요컨대 “어떤 군인이 훈장을 받기에 합당한데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기 때문이다”라는 설명과 동일한 문장 양식이라는 것입니다. 전쟁에서 공을 세운 이는 오직 그 군인입니다. 훈장을 주는 이는 전쟁과 아무 연관이 없습니다. 그 군인 혼자 훈장 받기에 합당한 일을 했기에 모든 영광은 오직 자신의 것일 따름입니다. 주변 사람은 그렇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진술한 것에 불과합니다.  

마지막으로 문맥에서 의미를 살펴봅시다. “그 생물들이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돌릴 때에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9,10절) 요한사도가 환상 중에 본 천국의 네 생물들이 하나님에게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렸다고 합니다.

“돌렸다”는 단어의 뜻이 무엇입니까? 원어로는 “준다”는 의미로 광범위한 경우에 사용되었는데 영어로도 간단하게 give로 번역되었습니다. 본문에 한해 한국어 번역이 아주 잘 된 것 같습니다. 명확하게 되돌려준다는 뜻은 아니지만, 마땅히 받기에 합당한 자라는 뜻이지 않습니까?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받기에는 전혀 합당치 않는 인간에게는 그것들을 “돌린다”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 없지 않습니까?

네 생물들은 천국 보좌에서 하나님 곁에 시립하여 호위하는 영적인 존재들입니다. 그들 또한 그것들을 받기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모든 영광과 존귀와 감사는 오직 하나님만 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이전에 원칙적으로 하나님 고유의 것이거나 그분에게서 기인할 뿐입니다. 그 생물들이 직접 행한 행위는 8절에 따르면 밤낮 쉬지 않으며 “하나님은 거룩하시다”라고 찬양한 것뿐이었습니다.

또 10절에 따르면 천국에 있는 인간인 이십사 장로는 어떻게 했습니까? 경배하고 자신의 면류관을 하나님께 던졌습니다. 우선 하나님에게 경배했고 또 경배하면서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받기에 합당하신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라는 천사들의 찬양에 진심으로 동의하고 합창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이미 받은 면류관마저 자기들이 받을 가치와 자격이 없다는 즉, 합당하지 않다는 의미로 하나님에게 되돌려 드리지 않습니까?    

참고로 “받으시기에”(11절)의 헬라 원어는 능동적으로 “~을 취하다”, “~을 잡다”라는 뜻입니다. 문법적으로 따져도 문장의 주어는 하나님으로 단수로 받으며, 또 “받다”라고 번역된 동사도 능동태 부정사입니다. 즉 인간이 바친 행위를 했다는 의미는 없습니다. 그러나 직설적으로 번역하면 마치 하나님에게 영광과 존귀와 능력이 없거나 부족했는데 새로이 덧붙였다는 의미가 되어버립니다. 합당하다는 단어와 연결하여서 원문의 뜻이 왜곡되지 않으면서 도 더 정확한 의미가 되도록 번역의 묘를 살렸다고 보면 됩니다.    

인간에게도 허락하신 영광과 존귀

‘영광’과 ‘존귀’와 ‘능력’은 오직 하나님에게만 속한다는 진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절대적이고 영원한 진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할 때에 당신의 속성 중에 일부를 나눠주거나 닮게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좀 더 확장해서 따지면 하나님은 이 고유 속성마저도 인간에게 제한적이나마 공여(供與)하셨습니다.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저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쒸우셨나이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 아래 두셨으니 곧 모든 우양과 들짐승이며 공중의 새와 바다의 어족과 해로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시8:4-9)

사람과 인자는 같은 의미로 반복하여 강조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할 때에 특별한 계획을 갖고 있었습니다. 다른 모든 피조물을 당신 대신에 인간더러 다스리게 한 것입니다.(창1:28) 그래서 사람을 천사보다 조금 못한 존재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물질계에서 육신의 몸을 입고 살아야 하지만 영계에 계신 하나님과도 성령 안에서 영적 교통을 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이 땅을 관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 시편 기자는 그래서 인간의 그런 신분, 위치, 특권을 두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쒸우셨다”라고 표현했습니다. 하나님만이 갖고 있고 그분께만 속하는 영광과 존귀는 물론, 만물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능력까지 일부 나눠주었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과분하고 영광스런 일입니까? 그러니까 더더욱 그 모든 것을 받으시기에(돌리기에) 합당한 분은 오직 하나님뿐인 것입니다. 말하자면 요한계시록 4;11은 천국판 시편 8편인 셈이자, 그와 동시에 이십사 장로들이 시편 8편을 천국에서 찬양한 셈입니다.  

정작 신자가 반드시 알아야만 할 더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허락하신 영광과 존귀는 만물 중에 가장 뛰어나고 하나님의 청지기로써 만물을 다스리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을 위해서 기도한 내용을 기록한 요한복음 17장을 천천히 읽고 묵상해보십시오.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저희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저희로 내 기쁨을 저희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17:1,10,13,15,22)  

간단히 요약하면 당신께서 제자들을 구원하려고 십자가에 죽는 것이 당신은 물론 성부 하나님의 영광이 된다고 합니다. 또 그 일로 인해서 제자들에게서 영광을 받았다고까지 말합니다. 제자들은 그날 밤 겟세마네에서 겁을 먹고 당신을 버려두고 뿔뿔이 도망갈 것인데도 말입니다. 제자들이 당신께 영광을 바친 적이 없지 않습니까? 당신께서 십자가 죽음으로 그들을 구원하는 것 자체가 당신께 영광일 뿐 아니라, 앞으로 그들이 당신의 뒤를 따라서 십자가 구원의 길을 전파하고 실천도록 작정하고 이끌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을 죄에서 구원을 했어도 천국으로 바로 데려가지 않고 이 땅에 남겨둔다고 합니다. 그리고 악에 빠지지 않게 보존하려고 하늘로 승천하신 후에도 중보기도하시겠다고 합니다. 제자들로 복음 전파 사역을 잘 감당하게 하려는 목적입니다.

나아가 당신이 받은 영광을 제자들에게 다 주었다고 합니다. 스승을 세 번이나 부인하는 비겁한 베드로를 비롯해 제자들 모두에게 당신의 영광을 주시다니 도무지 어찌된 연유이며 무슨 영광입니까? 바로 당신께서 행하신 십자가 구속 사역의 영광입니다. 예수 믿는 신자 모두는 그런 영광에 동참하도록 초청받았습니다. 아니 예수님이 가졌던 십자가에 죽는 영광을, 그래서 오직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와 은혜만 세상에 드러나도록 하는 영광스런 소명을 이미 다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영광을 이미 소지 했다는 것은 또 하나님 보시기에 예수 믿는 신자를 예수님과 동격으로 대우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실체, 권위, 능력, 속성 등에서 결코 같을 수 없지만 주님의 지상 사역과 같은 일을 행할 때에는 제한적이나마 하나님의 속성을 나눠주어서 우리를 통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일에 충성하는 자는 주님과 같은 위치로 간주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 사도들의 그 놀라운 능력과 영성과 왕들마저 굴복시키는 경건함이 그러했지 않습니까? 오늘날 예수 믿는 신자도 동일한 위치에 설 수 있습니다. 머리 둘 곳이 없으며 따르는 자가 적은 예수님이 가신 좁고 협착한 길을 한 걸음씩 묵묵히 따라갈 때에 하나님의 영광과 존귀와 능력이 반드시 우리를 통해 주위에 드러나고 또 주위를 거룩하게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예수 믿는다는 것, 그분의 제자가 되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존귀하고 영광스럽지 않습니까? 정말로 그분만이 세세토록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실 뿐입니다. 아멘!

3/3/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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