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일전 우리 차에 도둑님이 드셨다. 출근하려 차문을 열려는 순간 뭔가가 이상했다. 가만히 보니 운전석 옆좌석 유리창이 산산이 부숴져 있었다. 번득 생각 난 것이 차 안의 물건들이였다.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는 우리는 늘 차 안에 포장된 물건들이 즐비하게 실려져 있다. 만약 그것 분실하면 몽땅 다 변상해 줘야하기에 가루가 된 유리조각에도 아랑곳 않고 물건을 체크하기에 바빴다. 다행히 물건엔 전혀 손을 대지 않은 것 같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손이고 몸 속이고 유리가루가 들어가 따끔 거리지만 물건이 고스란히 있어준 것이 너무도 감사하여 따가운 느낌도 즐겁게 참을만 했다. 차 안 여기 저기 뒤진 흔적은 있지만 아무것도 가져 간 것이 없기에 또 얼마나 감사하던지. 아마 현찰을 노렸던가 본데 원하던 돈이 없어서 도둑님도 많이 서운했겠구나 싶었다.
가만히 보니 우리차만 그랬던 것이 아니였다. 옆에 주차되어 있던 우리 성도님의 차도 여지없이 창문이 부숴져 있었다. 남편과 함께 우리 성도님의 집에서 신세를 자주 지고 있다. 그날도 그 성도님 집에서 신세를 지고 출근하려다가 그리된 것이다. 우리차에 항상 물건이 많이 실려있기에 성도님은 늘 우리 차 바로 옆에 자신의 차를 세워 놓는다. 혹여 도둑님이 물건을 탐낼까 염려하여 조금이라도 자신의 차로 가리워 보려고 배려하느라 우리 차 바로 옆에 주차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성도님의 차도 피해를 입었으니 여간 죄송스럽지가 않았다. 얼른 달려가서 성도님을 깨웠다. 역시 성도님의 차에도 없어진 물건은 없었다. 그렇지만 우리 차 옆에 서 있다가 공연히 봉변을 당한 것 같기에 너무도 미안스러웠다. 그런데 도리어 성도님은 우리에게 미안타 하신다. 자신의 집 주차장에서 벌어진 일이니 자신이 미안하다며 어쩔 줄을 몰라하신다. 어쩌면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이 남다르신지 정말 고맙기 그지없는 분이시다.
요즘 남편의 건강이 좋지 않아 아이들이 많이 힘들어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이런 일까지 있으니 아이들 입이 댓발 나왔다. 왜 숨 돌릴 틈도 없이 연속 사고, 사고인지 모르겠다고 투덜거리는 아이들을 보며 맘이 아팠다. 그래도 잃은 것 없으니 얼마나 감사하냐며 아이들을 다독거리며 설득하기엔 이젠 아이들이 너무 커버린 것 같다. 아파도 하며 힘들어 휘청거리기도 하며 헷갈려서 기우뚱거리는 걸음으로도 걸어보며 스스로 깨달아 가는 것만 자신의 것이 되는 것을 이젠 알고 있는 아이들에게 무슨 말로 위로할 수가 있을까 싶어 안스러이 바라만 보고 있을 수 밖엔 없었다.
퇴근길에 남편이 차안을 이리저리 뒤지더니 잃은 것이 있다며 곤란한 표정을 짓는 것이였다. 가슴이 덜커덩 또 내려 앉았다.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교회 가방이 없어졌다고 한다. 성경, 찬송가, 찬양곡집, 제자훈련 교제, 예산안.... 중요한 것들이 많이 들었는데 어쩌나 하며 울상이 된 남편을 보면서 그만 도둑님들의 표정이 떠올라 한바탕 웃음을 참지 못하였다. 그 가방 속에 많은 돈이 들었으리라 예상하고선 얼마나 가슴 설레이면서 숨 가쁘게 들고 달렸겠는가 말이다. 도착하여 열어본 가방 속엔 기대하고 기다렸던 돈은 없고 성경책만 오롯이 앉아있을 때 그들의 맘이 어떠했겠고 그들의 표정히 어땠을까 싶어 남편에겐 미안하지만 웃음을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
왜 우리에겐 이런일만.. 하며 입이 댓발 나와 있던 딸들과 함께 그 도둑님들의 표정을 그려보며 모처럼 실컷 웃어 보았다. 그리곤 우리 가족은 이리 맞아도 복음, 저리 맞아도 복음.. 그래, 복음만 전파된다면.. 그런 소망으로 살 수 있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 해 보았다. 신앙 안에서의 삶, 정말 견디기 힘들때도 많고 어려운 길이지만 오로지 하나님만 더욱 더 의지하며 그 하나님 때문에 감격하는 이유를 점점 더 알아가도록 조심스레 걸어 보자고 아이들과 함께 서로를 또 도닥거려 보았다. 물론 늘상 넘어져서 아픔 위에 또 다른 아픔이 있을지라도 하나님 때문에 다시 일어나는 가족이 되자고 다짐 해 보았다. 그 도둑님들도 부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참 생명의 맛의 어떠함을 알고 기뻐 뛰는 자들로 변화 되길 기도 하자며 오히려 이 사건이 서로의 귀중함을 절감하는 귀한 시간들이였음을 고백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