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막1:3)
광야에 하나님의 소리가 있습니다. 광야에서 예수님의 사역의 시작을 준비하였습니다.
궁궐, 도시, 편안한 곳에서 하나님의 소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광야에서 하나님의 소리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소리를 듣기 위하여는 광야로 나아가야 합니다.
고통의 자리 그곳에 하나님의 소리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의 시작을 준비하는 것도 광야에서부터 시작하였습니다. 광야는 우리가 원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자리가 아닌 그곳에 하나님의 소리가 있으며,
그 곳에서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광야에서 겸손히, 묵묵히 광야의 그 고통을, 그 불편함을 견디어 내며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그 때를 인내하며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광야에서
하나님 광야를 기뻐할 수 있도록 하여 주옵소서. 광야를 만났을 때 즐거워 할 수 있도록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소리가 있는 그곳,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그곳이기에 감사할 수 있도록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내가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하는 고통은 진짜 고통이 아닙니다.
너무 고통스러워 말도 못하고 하나님께 눈물로만 호소하고 있는 그 시간들이 진짜 고통이지요.
그런데 극한 환경에서는 사람들이 두 가지로 나뉘어집니다.
사막이나 빛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 동굴이나 깊은 바다에서는 기괴한 동식물들이 많이 살고 있지요.
그 고통을 이기려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괴물이 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우리가 알다시피 정금이나 조개진주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없이 고통을 이기다보면 어느새 괴물이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방법으로 그 고통을 견디다 보면 어느새 정금 또는 조개진주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죄로인해 고통받으실 것을 아셨기 때문에 고통 속에 정금을 숨겨 놓으셨습니다.
고통 속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정금이 있습니다.
세상 종교들도 이 원리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불교나 힌두교 등에서 기괴한 수행이나 고통을 스스로에게 가하여 나름의 깨달음을 얻고 그것을 정금같이 알고 살아가고 있지요.
저는 그것을 또 하나의 광명한 천사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견딜 수 없는 고통이 찾아와 내가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에 나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떠 안고 계시면서도 나보다 밑에서 나의 고통을 떠 받들고 계시는 예수님을 생각하면 그 고통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상황이 될 수 있겠지요.
하나님 나라에 이르기까지 도우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찬양합니다.
아멘^^
하나님의 부재가 광야입니다. 창조주를 잊은 그 자리, 모든 것이 우연의 결과가 돼버린 그 곳이 곧 광야입니다. 우리는 모두 창조주를 잊었습니다. 기억하고 있다면 이렇게 살 리가 없습니다. 아니 이렇게 살 수 없습니다. 우리는 타락하기 이전의 아담처럼 아버지와 하나인 적도 없었고, 에덴에서 쫓겨난 적도 없었기에, 마음이 가난하지도 애통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가인의 마음으로 살면서 아벨의 후손인 척할 뿐입니다. 물론 아벨과 가인의 육신적 후손은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아담의 후손이고, 셋의 후손이며, 노아의 후손입니다. 그러나 아담에게서 아벨과 가인이 나온 것처럼, 약속의 아들이라 믿었던 셋의 후손들이 물의 심판을 피할 수 없었던 것처럼, 그리고 바로 그 물의 심판에서 구원받은 노아의 후손들, 그중에서도 하나님이 세상에서 따로 불러낸 아브라함의 후손들 역시 모두 타락과 멸망의 길로 간 것처럼, 우리는 모두 가인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신자인지, 불신자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가인도 하나님께 제사를 지냈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과 제사를 목숨처럼 여겼습니다. 하지만 가인은 하나님을 향한 분노로 아벨을 죽였고, 유대인들은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죽여버렸습니다.
광야는 각 사람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을 찾지 않는 마음, 헛되이 찾는 마음이 곧 광야입니다. 찾지 않는 마음과 헛되이 찾는 마음은 다르지 않습니다. 비록 찬양과 경배, 기도와 묵상이 일상이 되어 있을지라도, 에덴에서 쫓겨난 아담의 마음, 하나님과의 분리를 진실로 애통해하는 가난한 마음으로 찾고 있지 않다면, 그 마음이 곧 광야입니다.
우리는 모두 광야입니다.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불신자도, 하나님을 찾고 알고 추구하고 있는 신자도, 모두 광야입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는 우리 모두를 향한 것입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기에 피조물인 자신의 처지를 망각하고, 각자가 세상의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외치는 하나님의 애끊는 절규입니다. 당신의 독생자를 이 악한 세상에 희생제물로 보내시는 아버지의 안타까운 호소입니다.
광야로 나갈 필요는 없습니다. 내 마음이 광야임을 알고 다만 들을 뿐입니다. 아버지의 그 마음이 내 마음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아버지께 바랄 뿐입니다. 우리가 할 것은 없습니다. 할 수 있는 것도 없습니다. 우리 안에서 나오는 것은 오직 악할 뿐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