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막1:11)
이 왕 세례 요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나만 더 얘기하고 넘어 가겠습니다.
이 번 묵상에서 문득 생각난 것인데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을 여자가 낳은 자 중 가장 큰 자라고 말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예수님의 길을 직접적으로 준비한 자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이전엔 어느 누구도 예수님의 길을 직접 준비하진 못했습니다.
또 한 가지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을 꼽으라면 가롯 유다를 꼽는 데 주저함이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직접 판 장본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시대 이전의 믿음과 덕은 고만 고만한 것입니다. 다윗과 수많은 선지자라 할지라도 예수님의 모형과 그림자를 바라보는 믿음의 생활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을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라 하였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예수님 오신 이후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며 사는 시대입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이 세상에서 세례 요한보다 더 큰 사람이 될 수도 있고, 가롯 유다보다 더 불행한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오신 이후의 시대의 삶은 모든 것이 예수님과 연결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가 예수님을 세례 요한보다 더 영광스럽게도 할 수 있고, 가롯 유다보다 더 욕되게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시대 이 전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잘, 잘못 하나가 예수님의 영광과 모욕과 직접적인 연관이 되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의 행하는 것들이 예수님의 재림의 준비이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예수님의 초림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중요한 일을 우리가 곧게 할 수도, 굽게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은 세례 요한보다 더욱 더 깊은 영성의 삶이 되어야합니다. 세례 요한 보다 더 세상의 욕심과 정욕을 끊고 살아야 하며, 세례 요한 보다 더 하나님과 가까이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우리의 삶이 세상 것에 대하여 언제나 죽은 자로 반응할 수 있게 하여 주소서.
이 세상 것과 세상에 주어진 삶은 단지 하나님을 좀 더 잘 섬기며, 하나님 나라의 법도를 좀 더 잘 지키게 할 수 있는 도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