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로마의 침공 이후로 가나안땅은 황폐해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뿔뿔히 흩어져서 고난을 당한다고 성경은 예언을 했습니다. 정말 예언이 다 맞아 떨어졌는데요... 이스라엘 민족이 독일한테 당한 홀로코스트도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성경 예언의 한 부분인가요? 아니면 성경과 별개로 나치의 극우세력 정치적 행위인가요?
2, 1948년 이스라엘 건국이 성경이 예언한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하나님의 뜻으로 믿고있습니다. 근데 문제는 2000년 이상 기존 가나안 땅에 살던 팔레스타인들에게 너무 양아치 같은 짓을 하는거 처럼 보입니다. 이스라엘 건국을 위해 가나안 땅에 두 나라의 공존에 따른 부작용과 팔레스타인들의 피박은 어쩔수 없는 하나님 예언의 희생양인가요??
2021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1. 넓게 보면 홀로코스트도 이스라엘 민족이 짓밟히는때, 곧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방인의 때'에 이스라엘 민족이 전세계에서 받을 핍박 중 하나에 속합니다. 하지만 비단 나치만 유대인을 미워했던 것은 아닙니다. AD70년의 디아스포라 이후로 전세계는 줄곧 반셈족주의 풍토속에서 유대인을 멸시해왔고 그것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여러 유대인 음모론은 양산하고 있습니다. 히틀러의 만행은 그같은 풍조가 극단적으로 나타난 하나의 예시입니다.
그 배후를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사탄이 유대인의 멸종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들과 관련된 성경 예언이 아직 성취를 목전에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유대인들의 행실이 스스로의 재난을 불러일으킨 면도 없잖아 있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우리는 반유대주의적 사고에 자꾸만 빠지고픈 유혹을 점검하고 경계할 필요는 있습니다.
극단적 세대주의나 시온주의를 받아들이라는 뜻도 결코 아니고, 무조건 유대인들을 정치적으로 지지하라는 뜻도 결단코 아닙니다.
다만, 그들의 예언적 중요성과 우리에게 예수님과 성경을 전달해주는 통로로 쓰임받았던 그들의 의의를 잊지말고 그들을 위해 기도해주고 사랑하고 긍휼히 여기자는 뜻입니다.
2. 팔레스타인 문제는 워낙 민감한지라 지식없는 저로서는 함부로 판단내리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의 죄로 인해 고통받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고초를 무시하고 싶지도 않고 (결국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싸움과 죄에 동참해 같은 가해자가 되어버렸지만) 그렇다고 이스라엘의 국가적 회복이라는 사건을 하나님의 종말론적 계획과 주권으로부터 아주 분리시켜 무관한것으로 치부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성경의 종말 예언에는 이스라엘땅과 관련된 대목이 매우 많기 때문입니다. 모든 예언을 지나치게 상징적 해석으로만 비중두어 해석해버리는 신학자들은 그것을 부인하겠지만요)
기호님과 피스님께서 친절하게도 정답을 이미 다 달아주셨네요. 한두가지만 첨언하자면;
첫째 이스라엘에 대한 성경의 예언을 정확히 분별할 필요가 있는데 이전에 답변했던 말씀을 다시드리겠습니다. 구약선지자들은 당시의 역사적 상황에 맞추어서 예언했기에 이스라엘에 대한 구약 예언은 일차적으로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나라와 성전이 회복될 것을 의미합니다. 그럼에도 성령이 영감을 주어서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을 예표 상징 묵시하는 의미도 내포되었습니다.
그 예언들을 아주 확장해서 1948년의 이스라엘 건국도 포함된다고 해서 틀렸다고까지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석하려면 그 전에 나치제국의 홀로코스터에 대한 예언도 있어야 하나 그렇지 않습니다. 구약성경에는 구약의 이스라엘을 괴롭힌 앗수르, 바벨론, 바사, 마대, 헬라제국, 로마제국에 대한 예언만 있습니다.
신약에선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AD 70년의 로마에 의한 멸망과 함께 종말에 대해서 예언했습니다.(마24장 참조) 따라서 이스라엘에 대한 신구약에 대한 예언들을 포로귀환과 예수님이 초림과 재림으로 이루실 메시아 왕국에 대한 의미 외에 신약 이후의 역사적 사건과 상황에 일대일로 대비해서 해석해선 안 됩니다. 요컨대 홀로코스터나 팔레스타인의 현 상황이 성경예언과는 즉,하나님의 뜻과는 직접 연관되지 않습니다. 이 둘은 인간 죄악의 결과입니다.(롬1:28-31)
둘째로 두 질문에서 공통적으로 궁금해하시는 내용이 하나님이 예언한 것과 그대로 실제로 일어난 (악한) 사건의 상관관계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자유의지로 스스로 악한 짓을 범하는 그대로 놓아두고도 당신의 예언을 완벽하게 이루실 만큼 광대하십니다. 인간의 자유의지와 하나님의 계획에는 한 치의 상충 모순이 없습니다. 인간은 인간 스스로의 죄로 망하는 것이며 그 전에 하나님이 그렇게 되도록 무작정 방임한 것이 아니라 회개의 기회도 충분히 주었으므로 하나님의 탓을 절대로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지금 당장 인류를 멸망시켜도 그분의 영광에는 한 치의 손상도 없다는 뜻입니다.
사탄의 궤계는 악을 악인줄 모르게 하는 것입니다. 아담에게도 그랬고, 그의 모든 후손에게도 마찬가집니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부인하라고 하신 까닭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이방인과 섞이지 않고, 율법 안에만 있으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오늘날 신자들도 그렇습니다. 되도록 많은 시간을 교회 안에 머물고, 신자끼리 교제하며, 주일을 지키고, 성경을 열심히 읽으며, 기도와 봉사와 전도와 헌금 등에 열과 성을 다하고, 죄 짓지 않고 양심적으로 사는 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바울이 자기의 모든 자랑을 똥처럼 여기고 버린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모든 의를 버려야 합니다. 그것이 얼마나 무가치한 것이며 심지어 악한 것인지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 나의 상식과 판단과 정의가 어떻게 창조주를 모욕하고 있는지 진정으로 깨달아야 합니다.
악은 피하거나 멀리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악이 악을 피한들 악이 선이 되지는 않습니다. 악이 선이 되는 길은 스스로를 부인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사탄의 궤계는 유대인이나 예수님만을 향하고 있지 않습니다. 사탄의 궁극적인 궤계는 모든 인간이 스스로를 의롭게 여기어 하나님이 필요치 않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으면서도, 바로 자신들의 그런 생각과 행위로 인해 스스로를 의의 편에 세웠던 유대인들은, 끝내 자신들이 악이라는 진리를 거부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았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내가 바로 악이며, 사탄이 나의 아비이고, 내게서는 선한 것이 나올 수 없다는 진리를 외면하면 유대인과 똑같은 길을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유대인의 역사는 곧 나의 역사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악행은 바로 지금 내가 저지르고 있는 짓입니다. 날마다 성경을 읽고, 탄식하며 기도하지만, 나는 여전히 악하고 또 악합니다.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죽음 만이 나의 살 길임을 절감하면서도 내 안의 분노와 탐욕과 어리석음은 조금도 덜해지거나 멈추지 않습니다. "아!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라는 바울의 한탄은 곧 나의 한탄입니다.
모든 이를 진리의 길로 인도하시는 성령께서 우리의 죄를 참으로 깨닫게 하시고 주님의 긍휼 앞에 진정으로 엎드리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샬롬!
지금도 스스로 선지자라고 주장하거나, 따르는 사람들에 의해 선지자로 불리는 사람들이 있지만, 구약의 말라기 선지자 이후 하나님은 더 이상 선지자를 보내지 않으십니다. 침례 요한이나 예수님과 사도들을 선지자로 보기도 하지만 구약의 선지자들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더 이상 선지자를 보내지 않으시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모든 말씀이 예수님으로 완성되었기에 그렇습니다. 만일 부족한 것이 있다면, 그래서 따로 더할 말씀이 있어서 다시 선지자를 보내야할 필요가 있다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헛된 죽음이 되고 맙니다. 창조를 완성하고 인간을 구원하는 창조주이자 구원자로서의 행위가 아니라 기껏해야 인간적 순교에 불과한 행위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십세기 이스라엘의 건국도 마찬가집니다. 성경 이곳저곳에서 필요한 구절들을 따오면 이스라엘의 건국 뿐 아니라 그보다 더한 예언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성경을 대하는 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성경은 다른 사람의 죄가 아닌 나 자신의 죄를 보게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나오고 숱한 사건들이 벌어지지만 그것이 기록된 이유와 목적은 오직 하나입니다. 창조주를 떠나 타락한 피조물인 우리 자신을 바로 보게 하여, 피조된 본래의 형상을 간구하며 창조주의 품으로 돌아오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건국이 성경예언의 성취라손 치더라도 그것이 성경이 기록된 본래 목적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을 예언한 까닭은 나라가 망하고 민족이 포로로 끌려가는 절망과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소망을 버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스라엘만 특별해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뿐 아니라 당신께서 사랑으로 창조한 온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간절한 마음입니다.
가나안 땅에서 이천년을 살아온 사람들은 하루 아침에 터전을 잃었습니다. 돼지를 우리에 가두듯 높은 방벽을 쌓아 가두고 무장한 군대가 지키며 자유롭게 출입도 못하게 합니다.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성경 예언의 성취라고 속단하거나 정당화할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인류 역사 속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났습니다. 아메리카에서 수천년동안 살고 있던 원주민들은 유럽에서 굶주림을 피해 건너온 사람들에게 들소처럼 사냥당했고, 남아메리카, 호주 등등 지구 곳곳에서는 비슷하거나 더한 일들이 얼마든지 벌어졌습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몇 푼 안되는 돈에 눈이 멀어 바로 옆에 살고 있는 부족을 잡아다가 노예로 팔았습니다. 먼 옛날의 일이 아닙니다.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성경의 일차적 목적은, 바울이 율법에 대하여 말한 대로,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아담만 범죄한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이스라엘의 시조 야곱, 예수님의 족보에 등장하는 유다와 다윗 등등, 죄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습니다. 성령은 그들이 지은 죄가 바로 나의 죄임을 알게 합니다. 어느 누구도 죄인 아닌 자가 없지만, 내가 바로 가장 흉악한 죄인임을 깨닫게 합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누구든지 바울처럼 자신이 죄인 중의 괴수라는 고백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과 온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선민, 택한 백성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말씀 앞에서 자신의 죄를 깨닫고 돌이키면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그러나 말씀이 나 자신의 얘기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얘기로만 남는다면 하나님은 나와 무관한 분이 되고 맙니다.
성령의 인도가 있기를 바랍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