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초대교회때에 신도들이 많은 박해를 당한걸로 역사를 보면서 알고있습니다. 그중에 교활한 박해자들중에는 목에 칼을 대고 예수님을 부인해봐라, 혹은 성경을 발로 밝아서 부인해봐라, 십자가에 침을 뱉어라같은 협박으로 통과하면 살려주고 그렇지 않으면 죽음을 당하는 수모가 있었습니다. 사도들도 대부분 이런 수모를 당했죠.
1, 물론 목숨에 위협이 없을때 당연히 주님을 믿는다고 당당히 말하는건 당연하지만, 정말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 신자가 목숨이 걸려있는 협박을 받을때 부인하는 척만해서 목숨을 보존하는게 오히려 하나님에게 칭찬받을일이 아닌가요? 부인을 진심으로 하는것도 아니고 자신의 신념은 너무나도 아프겠지만, 이런 극한의 상황에서는 부인하는척은 얼마든지 하나님도 이해하는 행위 아닌가요? 저는 이 방법이 세상에서 제일 고통스러운 믿음에 대한 증명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2, 자신의 신념으로 도저히 예수님에 대한 부인은 못해서 죽을려고 해도, 자기 목숨이 아닌 자녀나 부인 혹은 부모의 목숨을 담보 "예수님을 부인해봐라 안그럼 가족을 죽이겠다" 이런상항이 영화 사이런스에 나왔습니다.이런상황에서은 그리스도인은 물론 사도들도 가족을 살리는 선택을 하는게 하나님을 위한거겠죠?
기호님이 이미 정답을 주셨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극렬한 풀무 불에도 머리카락 하나 타지 않도록(단3장), 또 다니엘은 굶주린 사자들이 곁에 오지 못하도록 지켜주셨습니다.(단6장) 신약시대 최초의 순교자 스데반은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고 말하며“(행7:55,56) 하늘의 기쁨과 평안 가운데 숨졌습니다.
순교의 기회는 하나님이 그것을 감당할 만한 믿음이 있는 자에게 그것도 반드시 그런 방식이어야만 할 때만 허락하십니다. 저처럼 믿음이 연약한 자로선 종교적 박해가 없는 시대와 장소에 살게 해주신 은혜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만약 어쩔 수 없이 그런 기회가 닥치면 말씀신대로 하셔도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위한 방안이라고는 말할 수 없으나 이해는 해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했다면 철저히 회개하여서 믿음은 더욱 성숙 견고해져야 할 것입니다. 한마디로 순교는 미리 가정하고 염려할 차원이 전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자는 현재 주어진 여건 안에서 최선을 다해 주님과 올바른 관계를 이어가면 됩니다.
누가복음 12장
11. 너희가 회당과 통치자와 권력가들 앞에 끌려갈 때에, 어떻게 대답하고, 무엇을 대답할까, 또 무슨 말을 할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12. 너희가 말해야 할 것을 바로 그 시간에 성령께서 가르쳐 주실 것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아무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