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의 몇몇 의문점들

조회 수 240 추천 수 0 2015.12.19 10:17:38

출애굽기의 몇몇 의문점들

 

질문 (1)

출 2:16 - 제사장 르우엘(이드로)는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이었나요?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왜 이스라엘 민족과 떨어져 살고 있었나요?

 

답변 (1)

이드로는 미디안 족속으로 모세의 장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제사장이 아니라 미디안 족속의 제사장(출3:1, 18:1)입니다. 고대에는 모든 민족들이 자기들 고유의 신들과 제사장들이 있었습니다. 미디안은 아브라함과 그의 후처 그두라 사이에서 난 넷째 아들 미디안의 후손들을 말합니다.(창25:1,2) 약속의 자손이 아니고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에 들지 않은 이방 민족입니다. 요셉을 애굽에 노예로 판 장사꾼이 바로 미디안 상고입니다.(창37:28)

 

질문 (2)

출 7:11 - 마술사들의 지팡이가 어떻게 뱀으로 변하나요?

 

답변 (2)

오늘날도 마술사들이 지팡이로 토끼나 비둘기 등으로 순간적으로 변장시키듯이 눈속임에 불과합니다. 뱀을 몸속에 감춰놓고 빠른 손동작으로 지팡이와 바꾼 것입니다. 그 뱀은 야생이 아니라 아무 힘도 없고 독도 없습니다. 그래서 곧 바로 아론의 지팡이(뱀)가 그들의 지팡이(뱀)를 집어 삼켰던 것입니다.

 

질문 (3)

출 7:17 - 여기서 말하는 피가 동물 몸 안의 피가 맞나요? 열 가지 재앙에 대한 고고학적 기록이 있나요?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완강하게 하셨다는 것은 직접적으로 바로를 조종하셨다는 뜻인가요?

 

답변 (3-1)

당연히 동물의 피와 동일한 성분입니다. 열 가지 재앙에 대한 명확한 고고학적 기록은 없으나 고대에는 자기 나라가 패전한 기록은 역사에서 지워버리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오래 전에 출애굽과 모세를 주제로 만든 영화 세실 데밀 감독, 챨톤 헤스톤 주연의 ‘십계’(十戒)에도 그런 내용이 나옵니다. 일부 자유주의신학자나 성경을 비평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기적이 아니라 당시에 애굽이 당했던 자연재해를 성경이 과장해서 표현한 것이라고 반발합니다. 예컨대 하수가 동물의 피로 변한 사건을 홍수가 나서 상류에서 붉은 흙탕물이 내려온 것이라고 강변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하수의 고기가 죽고 그 물에서는 악취가 나리니”(7:18)라고 그런 현상이 아님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8번째 메뚜기 재앙도 일상적으로는 서풍이 그 떼를 불러들이고 물러갈 때는 동풍이 불지만, 성경은 그 반대로 말하고 있기에(출10:13,19) 자연 재해가 아니라 하나님의 이적임을 기록으로도 정밀하게 밝혀 놓았습니다. 열 가지 재앙은 애굽의 토속 우상신들을 대변하는 것들로 하나님이 애굽의 모든 신들을 이기신 사건입니다. 이처럼 각 재앙의 성경 기록을 자세히 읽어보면 자연재해가 아니라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기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답변 (3-2)

바로의 마음이 완악해진 것을 성경은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신 것처럼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선 이스라엘 사람들은 인간만사의 배경에 당신의 택함을 입은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역사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요컨대 범사를 하나님 중심적으로 해석해서 성경을 기록했다는 점을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을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경우도 있지만 결코 로봇처럼 인간의 자의식과 의지를 묶어놓고 하신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거기다 하나님이 특정한 계획에 따라 능동적으로 행사하기보다는 인간의 자의적 행위를 묵시적으로 허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럼에도 모든 범사와 모든 인간을 다 동원하여서 당신의 영원하고도 완전한 계획과 일정을 전혀 모순 상충 없이 당신의 뜻대로만 이끌어갑니다. 바로가 스스로 완악해졌지만 그 전체적인 그림과 결과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대로 이뤄진 것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완악해진 것 자체는 바로의 자유의지에 의한 생각과 결정에 따른 것입니다. 출애굽기를 자세히 살펴보면 재앙의 종류와 피해 정도에 따라서 바로와 애굽 신하들의 반응이 달라짐을 그 정미하고도 각기 다른 설명에서 알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은 제가 질문자에게 다시 숙제로 내어드리겠습니다. 열 가지 재앙에 대한 바로와 그 신하들의 반응을 면밀히 다시 비교해 보십시오. 예컨대 6번째 재앙에 가서야 비로소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했다는 표현으로 바뀝니다. 이에 대해선 제 책 “그런 예수는 없다.”에 비교적 자세히 언급해 놓았습니다. 구매를 원하시면 운영자 책 사이트를 참조하십시오.)

 

질문 (4)

출 9:19 - 다섯째 재앙에서 애굽의 모든 가축이 죽지 않았나요? 각 재앙을 설명할 때 고센 땅은 아무 피해도 없었다라고 설명하는 반면 설명이 없는 것도 있는데, 모든 재앙은 애굽 사람들에게만 내렸나요? 그렇다고 한다면, 출 7:21, 8:6, 8:16, 9:9 등등 애굽 온 땅의 표현은 모순이 아닌가요?

 

답변 (4)

먼저 성경도 여러 문학 장르로 나뉘고 또 각각에 적합한 표현기법이 사용되었음을 아셔야 합니다. 역사 전기 예언 묵시 시가 서신 교리 등의 장르로 나뉘고, 비교 대조 강조 과장 상징 반복 비유 등 다양한 표현기법이 동원되었습니다. 말하자면 “모든, 온, 전부” 등의 표현이 때로는(실은 거의 대부분이) 강조나 과장의 용법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마귀가 예수님을 광야에서 시험할 때에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마4:8)을 보여주었습니다. 세상에 가장 높은 산 에베레스트 정상에서도 천하만국이 아니라 네팔 일부만 보입니다. 이는 상당히 넓은 지역을 보여주었다는 것이지 천하의 모든 나라를 보여주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또 아무리 하나님이라도 아브라함에게 후손을 바다 모래알 같이 많이 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쉽게 비유해 2002년 월드컵 때에 서울 모든 거리에 온 서울 시민이 응원하러 나왔다고 표현하고 또 그런 표현에 아무도 반발하지 않지만 사실은 정확히 전 거리, 전 시민을 뜻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애굽의 모든 가축이 죽었다고 해서 전 애굽의 모든 가축이 단 한 마리도 남지 않고 다 죽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무자비하신 분은 아닙니다. 애굽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온 심판인 줄 깨달을 수 있을 만큼 또 막심한 피해를 입어 큰 고통과 불편을 겪을 만큼 죽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돼지 콜레라가 발병해도 살아남는 돼지가 있듯이 말입니다. 또 이스라엘 지역에는 단 한 마리도 죽지 않은 사실과 대조하여서 강조하려는 목적으로 “애굽의 모든 가축이 죽었다”고 표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정말 문자 그대로 다섯째 재앙에서 이미 생축의 씨가 말랐으면 일곱째 재앙에서 생축을 모으라는 말을 할 수 없습니다.(출9:18) 같은 맥락에서 “애굽 온 땅”도 단 한 평도 빠짐없이 고센까지 포함해서라는 뜻이 아니라, 재앙이 미치는 범위가 그 만큼 넓었다는 것입니다.

 

고센 땅에 피해가 없는 것은 재앙이 닥쳐도 피해가 없었기도 했지만 아예 재앙과 관련 없었던 경우도 있었습니다. 애굽은 나일 강의 비옥한 삼각주에서 곡물을 생산하는 농업이 자랑이었습니다. 요셉 때에 인근나라의 가뭄까지 감당했을 정도이며 로마제국의 식량 공급처였습니다. 반면에 유대인들의 생업이었던 목축업을 비천하게 여겼고 그래서 따로 격리된 지역에 살도록 했습니다. 따라서 나일 강이 피로 변하는 것과 곡창지역을 습격한 메뚜기 떼 같은 재앙은 고센 지역과는 아예 무관했던 것입니다.

 

질문 (5)

출 11:4 - 출 10:28~29에서 바로가 모세를 보면 죽이겠고, 모세도 만나지 않겠다 하면서 또 다시 만나는데요? 만약 애굽 사람이 유월절을 지키고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랐다면 재앙을 피할 수 있었을까요?

 

답변 (5-1).

바로의 그 말은 극도의 분노에서 튀어나온 진심 반 협박 반의 절규였습니다. 그런데도 또 만났습니다. 일반인 같으면 왕의 그 말을 듣고도 왕에게 나오면 만나주지도 않을 뿐 아니라 그 자리에서 그 말 대로 극형에 처해질 것입니다. 질문하신 대로 바로가 또 만나주었습니다. 성경에 의심나는 부분은 당시의 전후 상황을 잘 살피며 묵상하다 보면 영적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바로가 열 번이나 재앙을 당하고도 정신을 못 차린 것은 이스라엘을 노예로 부려 먹는 공짜 노동력이 너무 아까운 것입니다. 나중에 출애굽 할 때에 하나님은 이스라엘더러 애굽의 금은보화를 다 챙겨서 나오도록 해줍니다. 밀린 임금을 정산시키는 공평한 하나님이십니다. 만약 모세를 죽이면 이스라엘 백성의 분노를 사서 노예반란 내지는 근무태만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바로는 염려한 것입니다. 더 중요하게는 모세에게 분명히 여호와의 큰 능력이 함께 함을 두려워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재앙이 끝나고 평상 질서를 되찾자 또 다시 마음이 바뀌고 바뀐 것입니다. 오늘날 신자들조차 급한 일이 생겨야 기도하고 고난이 해결되면 믿음생활에 등한시 하지 않습니까?

 

답변 (5-2)

신앙 상의 의문사항을 다각도로 따져보는 것은 좋지만 가끔 성경기록 범위를 넘어서는 경우가 있습니다. 바로가 그렇게까지 완악했기에 애굽 일반 백성들은 절대 유월절을 지키지 않았을 것입니다. 살펴본 대로 바로 본인의 자유의지에 따른 완악함과 그와 모순 상충되지 않는 하나님의 출애굽 구원계획에 의해서 당시 모든 상황이 전개되었기에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마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라는 질문과 같습니다. 질문의 범주를 넘어서고 상상할 필요조차 없는 의문입니다. 그럼에도 구태여 답변을 하자면 애굽 사람들은 유월절과 양의 피를 바르는 형식을 취하기 이전에 여호와에 대한 신앙을 먼저 소지했어야만 합니다. 열 번이나 재앙을 겪게 하는 것도 하나님이 이방 땅에 상천하지에 오직 당신만이 신임을 보여주는 일종의 신앙교육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아무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애굽인들이 바로의 명령이 두려우면 개인적으로라도 열 번의 재앙이 진행되는 동안에 고센 땅의 이스라엘로 찾아와 개종했어야 하고 또 그런 자가 유월절 의식을 행해야만 재앙을 피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룻, 아람의 군대장관 나아만, 로마 백부장, 에디오피아 내시 등의 회개 개종사건을 기록한 까닭입니다.

 

질문 (6)

출 12:38 - 이스라엘 민족이 아닌 다른 사람들은 누구인가요?

 

답변 (6)

구체적인 종족 이름은 알 수 없으나 우선 결혼하여 이스라엘과 함께 살던 자들일 수 있습니다. 또 열 가지 재앙과 홍해의 기적에 관한 소문을 듣고 감동하여 여러 종족 중에서 합류한 자들도 있을 것입니다. 상기 5번 질문에서 살펴본 대로 일부 애굽인들이 포함되었을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여호와 신앙을 확고히 먼저 소지하고 또 유대 민족적 전통과 높은 도덕률을 적극 수용 순종했어야 하나 그러지 못해 나중에 분란의 소지를 제공하게 됩니다.(민11:4 참조)

 

질문 (7)

출 13:9 - 손의 기호와 미간의 표를 삼는다는 뜻은 무엇이가요?

 

답변 (7)

하나님의 의도는 손에 글로 새기고 이마에 표를 만들어 붙일 만큼 즉, 몸에서 절대로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당신의 명령과 뜻을 마음에 깊이 새겨 절대 잊지 말고 항상 그대로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나중에 쉐마(신6:5)를 실제로 손에 새기고 그것을 기록한 작은 종이 두루마리를 작은 상자에 넣어서 이마에 달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질문 (8)

출 14:5 - 바로 자신이 이스라엘 민족들을 쫓아냈으면서 도망간 사실을 듣는다는 것이 이해가 안갑니다.

 

답변 (8)

다시 말하지만 성경은 과학적 논문이나 신문기사처럼 모든 사항을 육하원칙에 따라 상세히 밝혀놓은 책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에게 당신의 뜻을 계시해 놓은 책입니다. 그 계시를 합당하고도 명료하게 밝히는데 필요가 없는 사소한 부분은 아주 많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당시의 상황에 비추어 행간의 의미를 인간사회의 통상적 관습과 상식과 개연성에 비추어 추적해야 합니다. 바로가 쫓아냈지만 정확하게 도망간 시점과 인원과 방식 등에 대해선 마땅히 보고 받아야 합니다. 애굽 백성들이 군말 없이 금은보화를 이스라엘에 헌납한 사실도 보고해야 합니다. 그러니 더욱 분노가 치밀어 올라 홍해까지 다시 따라간 것입니다. 인간은 그만큼 탐욕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급한 일만 해결되면 다시 자기 방식대로 생각하고 죄를 되풀이하는 너무나 어리석고도 치사한 존재입니다.

 

질문 (9)

출 15:20 - 미리암이 2:4절에 나오는 누이인가요?

 

답변 (9)

예! 그렇습니다.

 

질문 (10)

출 15:25 - 여기서 주신 법도와 율례는 무엇인가요?

 

답변 (10)

성경을 읽을 때에 절대로 한 절씩 따로 떼어서 읽지 마십시오. 원본에는 장절 구분이 없었습니다. 반드시 앞뒤로 연결해 전체 스토리, 문맥, 주제를 파악하며 읽으십시오. 그리고 모든 구절에 경건 심오하고 신령해서 난해한 내용이 있으리라 지레 짐작하지 마십시오. 쉽게 국어공부하듯이 내용부터 차분히 따지십시오. 25절 끝이 “시험하실쌔”라고 문장이 끝나지 않고 26절에서 “가라사대”라고 이어집니다. 따라서 이때에 따로 거창한 장문의 율법을 주신 것이 아니라 바로 26절 내용이 그 규례인 셈입니다. 당신의 말씀에 순종하면 질병 특히 애굽에서 내린 재앙은 내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질문 (11)

출 24:12 - 20~23장의 모든 내용들을 돌 판에 세기신건가요?

 

답변 (11)

십계명만 두 돌 판에 나눠서 새겨졌다고 해석합니다. 율법 전체 내용을 적었다간 모세가 양 손에 들고 내려올 수도 없습니다. (참고로 몰몬교에선 몰몬경 전체 내용이 금판에 새겨져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럼 그 금의 양은 어마어마해 초대교주 죠셉 스미스가 들고 옮길 수도 없고 당시 서부 개척 시대의 무법자들이 절대 그냥 두지 않았을 것입니다.)

 

질문 (12)

출 33:20 - 출 33:11에는 모세와 하나님이 대면하여... 라고 적혀있는데요?

 

답변 (12)

아무리 믿음이 좋고 의로운 모세 같은 인간도 하나님의 실체와는 직접 대면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직접 보는 자는 그 자리에서 소멸되어 없어집니다. 당신의 영광을 안 보여주겠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은 추하고 더럽고 악한 것과는 절대로 공존(共存)하지 못합니다. 그분만이 유일하게 절대적이고 완전하며 영원한 진선미입니다. 단 한 명의 예외 없이 이 땅의 인간은 죄에 찌들어 있기에 구원의 완성이 되어 영광스런 모습으로 변화되어야만 그분 보좌 앞에 설 수 있습니다. 반면에 당신께서 부르시고 세우신 종들과는, 특별히 성령이 일반 성도에게 내주하고 하나님의 절대적 계시인 성경이 완성되기 전인 구약시대에는, 음성이나 환상 등을 통해 직접적인 교통방식을 취했습니다. 하나님과 대면했다는 것은 바로 그런 방식으로 모세에게 당신의 뜻을 깨우쳐 주고 계시하셨다는 뜻입니다.

 

질문 (13)

출 40:34~37 -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 안에 가득 차면 들어갈 수 없고, 여호와의 영광이 걷히면 길을 떠나는데, 회막에는 언제 들어가나요?

 

답변 (13)

이런 구절에서도 자세히 국어 공부하듯이 살펴보십시오.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라고 말합니다. 두 가지 다른 상황이 나타났습니다. 그럼 구름만 회막을 덮일 때와, 영광이 함께 나타날 때 두 경우가 있었다는 해석이 가능해집니다. 구름이 덮일 때마다 항상 영광이 충만하면 질문하신 대로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기회가 전혀 없어집니다. 그럼 일단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또 밤에는 구름 기둥은 높이 뜨고 불기둥이 대신했습니다. 그 때에는 영광에 대한 언급이 없으니 즉, 단순히 이스라엘의 행진과 중단을 지시하는 때에나 모세에게 당신의 뜻을 계시해 주실 때는 들어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의 구체적인 상황은 아무도 모르나 성경이 “여호와의 영광이 충만하매”라고 추가로 언급한 이유에 대해 주목해야 합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성경이 과학실험보고서처럼 모든 상황을 하나 빠짐없이 정확하게 기록한 것이 아니므로 상식과 이성으로 잘 분별하시면 됩니다. 성경의 기록을 벗어나지 않되 앞뒤 문맥과 당시 상황을 잘 대비하면 구태여 신학적 지식이 없어도 이런 정도는 판단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더 정확한 해석은 여호와의 영광은 구름, 소리, 빛, 불, 천사 같은 매개체를 통해서만 나타납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실체가 나타나면 절대로 인간이 그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인간과 대면하여 교통할 수 있게끔 하나님 당신께서 낮추신 모습입니다. 모세는 구름으로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도 회막에 얼마든지 들어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역대하5:13,14를 보시면 여호와의 영광이 구름으로 성전에 가득 차자 제사장들이 "그 구름으로 인하여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그 자리에서 죽었거나 성전에 들어갈 수도 없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자동적으로 또 순간적으로 그 자리에서 무릎 꿇고 엎드릴 수 밖에 없을 만큼  그분의 그분다우심에 압도당했다는 것입니다. 아래 답변 14도 참조하십시오.  

 

질문 (14)

출애굽기에 나오는 여호와의 영광이 무엇인가요?

 

답변 (14)

영광(榮光-Glory)의 히브리 원어 카보드는 무거움, 장관, 풍부함, 존귀함 등의 뜻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하나님만이 갖는 당신의 당신다우심의 총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분다우심은 구약시대에는 주로 영광의 광채나 모든 것을 덮는 구름으로 나타납니다만 모세가 시내 산에서 율법을 수여받을 때는 흑암 중에 높은 산조차 떨게(울리는) 만드는 음성으로 계시하셨는데 그 또한 영광입니다. 하나님이 지금 임재(臨在) 내지 현현(懸懸)해 계신다고 인간이 자동적으로 인식하게 되어서 그 앞에 엎드릴 수밖에 없게 될 때에 수반되는 그분만의 장엄함을 말합니다. 신약시대 신자는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의 깨우침과 죄 씻음과 중생의 역사를 통해 예수 십자가 구원의 영광을 맛볼 수 있습니다.(딛3:5 히4:12,13)

 

질문 (15)

너무 가난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에 제물을 바치지 못하면 어떻게 되나요?

 

답변 (15)

가난한 자는 비둘기로 바칠 수 있습니다.(레5:7) 그마저 바칠 수 없으면 고운 곡식가루로 드려도 됩니다.(레5:11) 최소한 세끼 식사 일부를 절약해 바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의 율법은 모든 기업을 공평하게 분배했고 또 안식년과 희년 제도를 통해 채무를 탕감해주기에 그 율법대로 순종하면 원칙적으로 가난한 자가 나올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인간의 탐욕, 게으름, 죄 때문에 가난한 자가 생기게 되었는데 하나님은 그런 상황마저 감안해서 가난한 자의 구제를 위해 십일조와 희년 제도를 제정했습니다. 요컨대 아무리 가난해도 곡식 소제는 드릴 수 있었으며, 정말로 굶어죽을 정도라 제물을 바치지 못한 자를 하나님이 벌할 리는 없습니다. 오히려 제물을 많이 바치되 탐욕과 부정으로 가난한 자를 수탈한 자를 벌해도 말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의인 대신에 죄인을 구원하러 왔다고 말씀하시고 또 죄인과 가난한 자를 가까이 하신 이유입니다.

 

질문 (16)

하나님은 왜 재물을 자율로 하시지 않으시고 양을 정해두셨나요? 이것은 부자에게는 여유롭고 거지에게는 어려우며, 명령하여 재물을 바치게 하시는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감사의 마음을 모르시지 않나요?

 

답변 (16)

하나님은 구약시대의 이스라엘을 온전한 신정국가로 세우길 원하셨습니다. 최소한 전 백성이 여호와 단일 신앙을 가지고 중앙 성소에 모여서 당신께서 정하신 율법대로 그 신앙을 유지 성숙시키도록 했습니다. 성막, 성전, 제사장 제도 등을 제정했습니다. 그럼 그 제도를 유지하는데 최소한의 비용이 필요했습니다. 당장에 기업을 받지 못한 레위 족속의 생계를 보장해주어야 합니다. 성전을 유지보수하고 각종 절기 행사를 치르려면 경비가 필요합니다. 우선 이런 현실적인 이유로 제물의 최소한의 양을 정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또 최소한의 양이란 최소한의 믿음을 하나님과 회중 앞에 증명해 보이는 표식이었습니다.

 

나아가 각 제물의 종류와 양마다 나름의 의미와 목적이 있었습니다. 구약의 모든 제사법과 제물은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사역을 상징 예표합니다. 예컨대 대속죄제 때에는 반드시 양을 잡아 죽였어야 합니다. 자신들이 죄로 마땅히 죽어야 하나 양에게 그 죄를 전가해 대신 죽이고 자기들은 용서 받는다는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을 온전히 인식하고 감사와 경배를 돌려야 합니다. 따라서 제물의 양을 정한 것은 신앙교육과 훈련에서 반드시 필요한 조치입니다.

 

그럼에도 구약시대에도 자원하는 제물만 받는다는 하나님의 원칙은 불변이었습니다.(출35:21,29 36:3, 레7:16, 신16:10 등 참조) 또 질문 15에서 봤듯이 가난한 자의 형편을 충분히 고려했으며 하나님의 의도대로 하면 처음부터 가난은 생겨선 안 되나 인간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반면에 아무리 제물을 많이 바쳐도 창기의 더러운 돈이나 개같이 부정한 방식으로 번 돈은 절대 받지 않는다고 했습니다.(신23:18) 심지어 그런 제물에 배가 터지며 성전 문을 닫을 것이라고 했습니다.(사1:10-17, 말1:6-14) 하나님은 구약시대에도 진정한 감사와 경배에 바탕을 둔 자원하는 제물만 받았습니다. 제물의 양을 정한 것은 상기의 몇몇 이유로 당신의 백성이 헌신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이자 신앙교육의 목적이었습니다.

 

동물 희생 제사로 상징 예표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죽음으로 영단번에 완성되었습니다. 따라서 최소한의 제물의 양에 대한 규정도 신약성도에겐 더 이상 적용되지 않습니다.(히9장 참조) 그럼에도 율법 규정에 계시된, 제물에 관한 것도 포함해서, 하나님의 근본정신은 지금도 이 시대에 맞는 방식으로 계승 승화 준행해야 합니다.(마23:23 참조)

 

11/21/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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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출20:20-23 흑암 중에 숨은(?) 하나님 운영자 2012-07-04 627
39 출1:10,22 모세 출생의 비화 운영자 2012-04-17 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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