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1 1:1-9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조회 수 249 추천 수 0 2017.01.17 13:59:57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출애굽기 강해 (1)

 

 

“야곱과 함께 각각 자기 가족을 데리고 애굽에 이른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은 이러하니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스불론과 베냐민과 단과 납달리와 갓과 아셀이요 야곱의 허리에서 나온 사람이 모두 칠십이요 요셉은 애굽에 있었더라 요셉과 그의 모든 형제와 그 시대의 사람은 다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 애굽을 다스리더니 그가 그 백성에게 이르되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출1:1-9)

 

 

출애굽기의 중요성

 

새해를 맞아 새로운 각오와 믿음으로 헌신하겠다는 의미로 출애굽기 강해를 시작하겠다. 출애굽기를 택한 이유는 간단하다. 구약에서 창세기와 맞먹는 중요한 책이자 창세기와 바로 연결되는 책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창세기에서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언약을 체결했다. 그 언약은 아브라함의 몸에서 날 자가 후계자가 될 것이며 그의 후손들이 비록 이방에서 사백 년간 종살이를 하지만 반드시 창성해져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소유하게 될 것이라는 약속이었다.

 

이제 그 사백 년이 지난 후에 즉, 하나님의 때에 당신의 약속을 당신께서 역사하여 실현하기 시작하신다. 아브라함 언약의 계승자인 오늘날의 신자도 현재의 자신의 삶에 출애굽기의 은혜가 실현되고 있는지 점검해봐야 한다.

 

구약성경에서 가장 빈번하게 반복되는 말씀은 출애굽 이야기다. 하나님이 모든 신자가 알아야 할 가장 중요히 진리로 여긴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구원해낸 하나님이라는 선포를 지겹도록 반복한다.

 

출애굽 사건을 회상하면 당신이 누구인지 어떤 일을 하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신의 백성과 그 공동체를 어떻게 보호 인도하시는지 출애굽기만큼 여실히 또 정확히 계시해 놓은 책도 없다. 만약 당신에 대한 믿음이 떨어지거나 의심이 생기면 출애굽의 현장 홍해의 언덕으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실제로 유대인들은 현실의 고난에 부딪힐 때에 그랬다. 심지어 자기들의 우상숭배 한 죄 때문에 이방인을 통한 하나님의 징계를 받으면서도 뻔뻔하게 출애굽을 기억했다. 그럼으로써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소망을 버리지 않고 믿음을 회복할 수 있었고 구원을 얻었다고 구약성경 내내 일관되게 고백하고 있다. 세상의 어떤 민족도 경험은커녕 알지도 못하는 하나님의 권능과 사랑을 생생하고도 풍성하게 체험했다고 오직 여호와께만 감사와 경배와 찬양을 돌렸다.

 

문제는 구약성경에서 가장 강조하는 내용이고 유대인들도 그렇게 받아들였는데도 그들은 아직도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의 은혜를 가장 완악하게 거부하는 대표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타 공인하는 구약성경의 최고 전문가다. 지금도 살아 역사하는 유일하신 창조주 여호와에 대한 신앙을 굳건하게 유지하고 있다. 도덕적 지성적 종교적으로 가장 경건한 민족이다. 그럼 대체 유대인들의 오류는 무엇인가? 그들의 믿음과 기독교 신앙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하나님 대신 예수를 믿어라.

 

출애굽기는 세상 왕국 즉 사탄의 노예가 되어 사망의 자리에 있던 자들을 전적으로 하나님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만 구별하여 구출해낸 이야기다. 신학적으로 따져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을 가장 잘 예표(豫表) 한다.

 

간단하게 이렇게 생각해보라. 구약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모세요, 가장 중요한 사건은 출애굽이다. 신약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예수요, 가장 중요한 사건은 그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다. 하나님 구원에 대한 절대적 진리를 계시한 성경의 의도는 모세는 예수와, 출애굽은 예수 십자가와 분리해서 절대로 해석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유대인들은 예수님에게서 모세의 모습을 발견하지 못했다. 십자가에서 출애굽의 의미를 전혀 도출해 내지 못했다. 신약성경의 진리 됨과 예수님의 메시아 됨은커녕 선지자로도 인정하지 않았다. 구약성경만 믿는 절름발이 신앙이다.

 

성경은 구약의 창세기에서 시작해 신약의 요한계시록까지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가 계시되어 있다. 인간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에 따라 창조되어졌기에 그 사랑에 힘입어야만 창조된 목적대로의 참 인간답게 살 수 있다. 또 그 사랑에 따라 한 개인과 인류의 궁극적 구원이 완성된다.

 

쉽게 말해 유대인들은 하나님만 믿고 예수 그리스도는 믿지 않았다.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 안에 들어오지 않으면 기독교 신앙은 출발도 되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출애굽기를 읽고 배울 때에 두 가지 점에 주목해야 한다. 첫째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의 은혜를 더 풍성하고 깊이 있게 발견해야 한다. 둘째는 예수님의 모습을 모세에게서 찾아서 우리도 모세처럼 살아야 한다.

 

출애굽기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전반 1-18 장은 모세가 소명을 받아 동족을 출애굽 시켜서 시내 산까지 이끄는 여정의 역사를 기록했다. 후반 19-40장은 시내 산에서 율법을 전수 받는 과정과 율법의 구체적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젓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규정하고 있다. 신약적인 의미로 따지면 전반은 칭의의 구원을, 후반은 성화를 이루는 방안에 대해 말하고 있는 셈이다.

 

모세 시대의 연대와 인구

 

처음 1-2장은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부름 받은 모세의 출생 배경과 성장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오늘의 본문은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이주한 야곱의 열두 아들, 나중에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선조가 되는 이름을 열거하고 있다. 야곱이 아들 며느리 손자 등과 함께 겨우 70명으로 이주했는데 애굽이 두려워할 만큼 그 후손들이, 하나님의 약속대로, 창성해졌다는 간단한 내용이다.

 

출애굽의 연대에 대해선 두세 가지 설이 있지만 성경 자체가 증거 하는 것에 따라 BC 1446년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열왕기상 6:1에 따르면 솔로몬 왕이 즉위한지 4년 째 되는 해로부터 480년 전에 출애굽이 있었다고 말한다. 솔로몬이 왕으로 즉위한 후 4년 째 되는 해는 BC 966년인데 480년을 보태면 BC1446년이 된다. 또 출애굽 할 때에 모세가 80세였으므로 그의 출생은 BC 1526년경이 되고 바로 본문의 시기가 된다. 애굽에서 종살이 한 기간은 출12:40에서 430년이라 말하고 있다. 애굽으로 이주한 시기는 이를 역산하면 BC 1817년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동안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생육 번성하여 매우 강하고 온 땅에 가득해졌다.(7절) 애굽 사람이 자기들보다 많고 강할까 걱정할 정도가 되었다.(9절) 엄밀히 말해 이는 불합리한 말이다. 야곱 가족이 이주할 때에 애굽은 이미 세계 최강국이 되어 있었다. 겨우 70명으로 같은 기간 같은 장소 같은 조건에서 거주하면서 어떻게 이스라엘만 더 창성할 수 있는가?

 

민수기 1;46에 가나안 정복전쟁에 참여할 남자 장정이 603,550명으로 집계되었다. 전체 인구는 그 4배로만 쳐도 최하 2백만이 된다.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고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에 식량난이 닥칠 것이라고 멜데스는 1798년에 저작한 인구론에서 주장했다.

 

그는 인간은 자연적 상황에서 25년 한 세대 만에, 아마 당시의 평균 결혼 연령이었을 것임, 두 배가 된다고 했다. 단순 계산으로 부부가 네 명의 자녀만 낳으면 된다. 애굽에 거주한 430년을 25년으로 나누면 17세대가 되고 70명의 두 배를 17번 반복하면 무려 943만 명이 되기에 2백만 명은 충분히 가능하고도 남는 숫자다.

 

지금은 자녀 한 명만 낳고 여러 질병과 환경이 오염되었고 결혼도 하지 않고 동성결혼마저 늘어서 인구는 감소되는 추세다. 멜데스 시대는 물론 그 이전 고대에는 가족계획은 전혀 하지 않았고 자식은 하나님이 주신 상급이라고 여기고 아주 많이 낳았다. 위생이 열악해 아이들이 죽기도 했지만 야곱만 해도 아들만 12명을 낳았다. 이스라엘이 창성해진 것에 의심할 여지는 없다.

 

편애하는 하나님(?)

 

반면에 애굽도 같은 조건이라면 인구가 비례해서 증가하기에 이스라엘이 더 강해졌다는 것은 너무 심한 과장 아닌가? 구태여 겁을 낼 정도는 아니지 않는가? 하나님이 신자를 편애해서 이스라엘은 그 상급인 자식을 더 많이 주었고 애굽은 저출산 인구감소로 이끌었는가? 아무리 하나님의 신자에 대한 사랑을 강조하려 해도 기독교 스스로 하나님을 신자만 편애하는 편협한 분으로 해석하고 또 그렇게 불신자들에게 소개해선 안 된다.

 

옛날 한국의 양반집에서 귀하게 자란 자식은 병약하고 일찍 죽는 경향을 보였다. 영양과잉에 운동부족이고 주색잡기에 빠져서 그랬다. 반면에 평민과 상놈의 자식은 영양이 시원찮아도 평생을 노동으로 강건한 체력을 유지했고 더 오래 살았다.

 

이스라엘과 애굽의 처지가 그와 똑 같았다. 유대인들은 매일 반복되는 노동이 지루하긴 해도 특별한 고난이 따르지 않아 먹고 사는 데는 어쨌든 염려할 필요가 없으니 스트레스도 없었다. 광야에 방황하는 동안 애굽의 고기 가마 곁이 그립다는 불평이 빈말이 아니었다. 바로가 건축을 독려하려면 힘을 쓰게 하려고 그런대로 잘 먹였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이스라엘이 더 창성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많고 강했다는 것은 체력적으로 우세했고 큰 군대를 이룰 만한 수자가 되었음을 강조한 것이다.

 

창세기 강해 때에 이미 살펴본 대로 사백 년간의 종살이는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그분만의 비책이었다. 인간이 생각해 낼 수 없는 방안이다. 생래적으로 고난이 불편하고 남들 밑에 들어가기는 죽기보다 싫어하는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인간이 다른 나라에 노예가 되겠다고 차정하는 일은 죽었다 깨어나도 일어나지 않는다.

 

한마디로 하나님이 가나안 정복전쟁을 감당할 규모로 이스라엘을 성장시킨 것이다. 동시에 가나안 족속들이 죄에서 회개하도록 당신의 백성들 노예로 고생시켜 가며 사백 년을 넘게 기다려 주신 것이다. 이런 신은 어떤 종교에도, 엄밀히 말해 모든 종교가 인간이 고안해 내었기에 인간이 생각해낼 수 있는 방안이 결코 아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길은 인간의 생각과 길과 그 차원이 전혀 다르다.

 

당신의 절대적으로 완벽한 섭리에 따라 당신의 백성을 당신의 오묘한 사랑과 권능의 울타리에 가두어 두신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겉으로는 노예 신분이었어도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만의 사랑의 레이저 보호막이 그들을 덮어 싸고 있었다.

 

이제 때가 되어서 당신의 약속을 당신의 이름을 걸고 당신께서 이루신 것이다. 아무리 겉모습이 초라하고 사람들에게 멸시 받는 노예라도 하나님 안에선 창성할 수밖에 없다. 한 신학자가 출애굽기를 죽음을 거부한 한 민족의 이야기이자 자기 백성의 죽음을 거부한 하나님의 이야기라고 평한 그대로다.

 

이름 없는(?) 이스라엘 산파

 

본문에서 주목해야 할 바가 하나 더 있다. 이스라엘 12지파 선조의 이름은 다 열거했다. 반면에 애굽 왕의 이름은 아예 언급조차 안 했다.(8절) 단순히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이라고 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 극심한 기근에서 구출하고 공평정대하게 통치한 공로를 잊을 만큼 세월이 흐른 것이다. 구태여 이스라엘에게 책임감이나 미안한 마음 느낄 필요 없이 맘껏 학대할 여건이 되었다는 진술일 뿐이다. 애굽 왕의 이름이나 그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전혀 설명이 없다.

 

창세기와 출애굽기에 애굽 왕을 지칭하는 내용이 무려 167번이나 나오지만 개인의 이름은 단 한 번도 거명하지 않는다. 바로라는 직분만으로 호칭한다. 그래서 애굽 왕의 이름도 없으니 세속 역사가들은 성경의 기록의 진실성에 대해 의심을 제기한다. 그러나 명색이 종교 경전에서 167번이나 거짓말 할 수는 없다. 또 그런 거짓말로 세계적 종교가 될 수 없다. 무엇보다 어떤 극악한 자라도, 예컨대 저같이 교만이 극에 이른 자의 인생을 완전히 뒤엎어 바꾸는 영향력은 절대 끼칠 수 없다.

 

유대인들이 자기들의 대적이라서 바로의 이름을 기록에서 지워버린 것도 아니다. 한국 역사 교과서에 이또 히로부미, 도요또미 히데요시 등은 명기 해놓았다. 후손들에게 치욕의 역사를 절대 잊지 말라는 것이다.

 

성경은 비록 인간이 저작했지만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절대적 계시다. 바로의 이름이 없는 것은 철두철미 하나님의 관점에서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고대의 인구조사에도 빠지고 죄송하지만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한 것이 여자다. 비천한 직분을 가진 유대인 산파는 ‘십보라’와 ‘브아’라고 정확히 밝혀 놓았다.(15절) 예수님의 족보에도 이방 여인과 세상에서 손가락질 받는 죄 많은 여성의 이름들을 당당히 등재해 놓았다.

 

반면에 바로는 세상에서 권세 재물 명예가 아무리 최고라도 이름도 없다. 지금의 오바마나 트럼프 같은 지위임에도 하나님은 모른다.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하나님의 눈에는 바로는 한 개인의 인격체로 보이는 것이 아니다. 인간 사회가 굴러가게 만드는 기계의 톱니바퀴 하나에 불과할 뿐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의 이름은 일일이 다 기억하신다. 당신과 일대일로 교제 동행할 완전한 인격체로 대우하신다. 나아가 당신의 일을 대행할 청지기요 동역자로 삼으신다. 그럼에도 그 직분으로, 예컨대 ‘박 목사’라고 부르지 않는다. 세상에서 평가하는 기준은 당신에게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당신의 사랑의 품 안으로 진정으로 겸손하게 자기를 낮추고 들어와 그분의 긍휼만 소망하는 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고 절대적으로 완벽하고 영원한 권능으로 붙들어 주신다.

 

누가복음 16:19-31의 천국과 지옥 비유에서 예수님은 천국에 간 거지는 나사로라는 이름으로 부르나 지옥에 간 부자는 이름도 없다. 놀랍지 않는가? 하나님이 가난한 자는 사랑하고 부자는 싫어한다는 단순한 논리가 아니다.

 

거지는 세상에서 멸시 당하고 그 이름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 하나님께 불평할 수밖에 없는 처지인데도 순전하게 하나님을 믿었다는 뜻이다. 반대로 부자는 그 모든 형통과 소유가 하나님이 베푸신 것임인데도 그분께 감사하기는커녕 믿지도 않았다. 거지가 객관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음에도 사랑했다는 것은 온전한 진심이며 실제로 그분과의 인격적 개인적인 만남과 교제 동행이 이뤄졌다는 뜻이다. 이 비유는 거지와 부자라는 직분 신분의 비교가 아니라 누구라도 하나님 안에서 이름이 있느냐 없느냐의 대조다.

 

이스라엘 고유의 하나님 계획

 

출애굽기의 서론 중의 서론인 본문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지명(指名)해서 불러내었다고 선언한다. 열두 지파의 선조의 이름을 거명한 것은 대표 원리에 의해 아브라함의 언약에 기꺼이 동참하는 자는 모두 사랑하신다는 뜻이다. 산파나 모세나 하나님 안에서 동일한 신분이요 고귀한 인격체라는 것이다.

 

지명해서 불렀다는 것은 그를 일대일로 사랑할 뿐 아니라 각자와 그 공동체의 고유의 계획이 이미 마련되어 있다는 뜻이다. 나중에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밝힌 그 계획은 이스라엘을 열국 중에서 당신의 소유로 삼아 당신에 대하여 제사장 나라로 세운다는 것이다.(출19:5,6) 아브라함으로 복의 근원으로 삼겠다는 언약을 더 구체화 시킨 것이었다.

 

이제 이스라엘이 무엇에서 실패했는지 밝혀졌다. 그들은 하나님께 지명되어 불려 나왔음에만 초점을 두었고 그분이 불러내신 목적인 제사장 나라가 되는데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출애굽 사건을 회상할 때마다 택함 받은 백성이니 당연히 그에 걸맞게 사랑을 받아야만 한다고 고집한 것이다. 모든 민족에게 하나님은 차별해서 사랑하는 편협한 하나님이라고 소개한 것이다.

 

신약시대 신자들은 본질상 진노의 자녀, 본문 식으로 말하면 구약시대에는 부름 받지 못한 민족이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로 그 중간에 막혀 있던 담이 허물어지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어 그분의 소유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에게 다른 이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직책 즉, 제사장 나라로 세워졌다.

 

그렇다면 우리도 이스라엘 같은 오류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 화목하게 된 것에만 감사하고 화목하게 하는 소명에는 충성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닌지 출애굽기를 읽을 때마다 점검해야 한다.

 

혹시라도 우리만 좋으면 그만인 것 아닌가? 세상 사람들과 죄악과 흑암의 세력 앞에 빛의 자녀로 당당히 서있는가? 구원은 보장 받았으니 구원 후에 할 일은 그분께 받아낼 일만 남았는가? 애굽은 이 땅의 형통과 소유로는 세계 최고였으나 하나님은 눈곱만큼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사실은 제대로 기억, 아니 알고는 있는가?

 

정작 신년 초에 할 일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 안에 들어온 신자는 죽음을 거부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 할 이유가 없다. 우리를 붙들고 계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절대 죽음을 허락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내가 그분을 아는 것과는 도무지 비교가 안 될 만큼 속속들이 나를 알고 계신다. 나를 이름으로 기억하신다. 그 이름에 걸맞은 영광스런 계획이 이미 마련되어 있다.

 

신년 초에 내 계획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신자라면 하나님이 세우신 나에 대한 계획에 더 주목해야 하지 않는가? 불행하게도 많은 신자들이 그런 계획에 관심을 갖기는커녕 하나님이 내 이름도 모르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하나님 제가 교회 봉사와 헌금을 얼마나 많이 했으며 예배와 기도 모임에 결석한 적 없이 않습니까? 그런데도 아직도 왜 이 모양 이 꼴로 놔두십니까?” 엄밀히 말해 무슨 뜻인가? 혹시 내 이름도 모르는 것 아닌가? 제발 내 이름을 알아달라는 것이다. 구약의 이스라엘보다 못한 신앙일 수 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믿는 순간 이미 우리 이름은 하나님의 생명책에 등재되어 있다. 정확히 말해 이미 이름이 올라가 있는 자를 주님이 먼저 찾아 오셔서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주신 것이다. 그분을 믿는 순간 공식적으로 제사장, 화목케 하는 자로 세상에서 불려나온 것이다. 하나님의 손바닥에 내 이름이 새겨진 것이다. 매일 당신께서 우리를 보호하실 뿐 아니라 그 부르신 뜻대로 직책에 순종 충성하게끔 이끄신다는 것이다.

 

믿음을, 예수 믿는 특권을 간단하고도 쉽게 정리하면 이렇다. 하나님은 오바마나 트럼프의 이름은 몰라도, 목사 입장에서 죄송하지만 거듭난 참 성도의 모습이 둘 다 도무지 보이지 않기에, 내 이름은 알고 계신다는 것이다.

 

애굽에서 당신 백성을 구원해 내신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신 것이다. 더 이상 그분의 사랑과 권능에 대해 의심할 이유나 필요가 없다. 바울이 말한 대로 우리는 세상에서 아무리 무명한 자라도 하나님 안에선 모세 이상으로 유명한 자가 되었다.

 

하나님이 올해에 우리에게 세우신 계획은 오직 하나다. 모세처럼 거창한 일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모세는 인류 역사에 한 번 있는 인물이다. 그보다 제발 올해만은 가장 사소한 일에서 예수 십자가 은혜 안에 있는 모습을 보이고 가장 적은 사람 앞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베풀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출애굽기의 서두 본문이 가르치는 바다.

 

1/8/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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