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노래] 가슴으로 쓴 사모곡

조회 수 1176 추천 수 31 2010.09.27 13:27:47
<가지나물>

입원 첫날 가지나물이 먹고 싶고
미나리 나물이 먹고 싶고
쑥으로 만든 뭔 떡이지? 그것도 먹고 싶고..
제일 싼 나물, 그것이 무엇이라고

딸 자식이 있으면 무슨 소용이며
며느리가 있으면 또 무슨 소용이랴
거동하기 불편하고
보름 동안 몸서리치게 머리가 터질 듯이 아프고
가슴이 숨을 못 쉬어도 그냥 방치된 노인

뼈와 가죽만 남았어도 자나 깨나 자식 걱정
“어쨌거나 명이 길고 복만 많으면 된다”
한평생 근심걱정으로 일관된 삶




<증외손자>

그 아픈 와중에도 아기 얘기만 하면 웃는 우리 엄마
너거 키울 때는 좋은 줄 모르고 키웠는데
지금은 아기가 너무 좋단다
아들도 필요 없고 손자도 필요 없는 이 마당에
증외손자가 뭐라고
사진을 보여 주니 마냥 좋아하시며 하시는 말
아기 업고 자랑하러 동네에 자랑하러 갈 거라네



<신이 난 둘째 딸>

음식을 만들어 엄마 입에 호박전을 넣어 드렸네
설탕이 많이 들어가 “너무 달죠?” 했더니
“호박전은 달아야 된다” 세 개나 잡수시네
호박잎에 된장 넣어 쌈 싸 드렸더니 너무나 맛있게 잡수시네
도라지 나물, 고사리 나물, 깻잎순 나물
다 간이 맞고 맛있다네
파프리카, 복숭아 갈아 주스를 떠먹이니
한 컵을 다 잡수시네
이틀 동안 이를 안닦아 냄새 난다며 닦여 드리니
잘도 닦으시네
손녀딸이 사준 로션을 얼마줬냐 물었더니 총기도 있으셔
6만원이라 맞추시네
힘은 들고 몸은 피곤해도 마음은 흥분되고 기뻐
우리 엄마 맛있다 하시니
신이 난 둘째 딸




<울엄마는 코미디언>

안먹겠다고 이를 꼭 다문 울 엄마
“옆에 할배는 바보네 입도 못벌리고” 꼬셔서
“도대체 이건 뭔고, 이것들이 간을 맞게 했나
한번 먹어봐야 알제“
두부부침 한조각 넣어주니 꼭꼭 씹고서 하는 말
“두부네, 간이 맞네”
사과를 주면서 “이게 배요 사과요?”
“먹어 봐야 알지”
먹고서 하는 말 “사과네”
또 바나나를 보여주며 “이건 뭐요?”
아주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모르겠는데~?”
“바나나잖아” “아, 바나나가!”
울엄마의 이렇게 아기 같은 표정 처음 보네




<천만다행>

뇌가 손상이 되었어도
입맛이 살아 있으니 천만 다행
이미 손상된 뇌는 회복 불가능
하지만 위장이 괜찮으니
먹기만 하면, 영양이 들어가면
정신도 좀 더 맑아지지 않을까?
노인과 아기는 거두는 대로 간다지 않는가
지금부터라도 불쌍한 엄마 위해
애를 써보리라 다짐해 본다




<시어머니>

난 시집가서 시어머니를 친정엄마보다 더 좋아했었다.
전화 오면 “에미야 어디 아픈 덴 없니?” 첫 마디가 그 말이었지.
그럼 며느리 왈 “어머니 어디가 아파요!”
“그럼 니돈으로 약 해 먹어라 난 돈이 없으니까”

결혼 초 연탄재를 큰 거 하나 작은 거 하나 담아놓고
딸랑딸랑 종이 울리면 어느새 큰 걸 이고 저 앞서 달려가시는 우리 어머니 난 뒤 따라 가면서 하는 말 “동네사람이 뭐라 하겠어요. 젊은 며느리는 작은 거 이고 시어머니는 큰 거이고.”
그럼 어머니 왈 “니보다 내가 더 힘이 세다.”

“어머니, 감기 들어서 한숨자고 나올테니 깨우지 마세요.”
다 자고 나올 때까지
숨도 조용히 쉬시며 마루에서 가만 계시는 우리 시어머니!

잔소리하는 친정어머니보다 시어머니를 정말 좋아했다, 난!
친정엄마는 시집가면 시어머니한테 잘하라고 가르쳤기 때문에 시어머니한테
잘 할려고 했고 친정엄마한테는 안 잘해도 되는 줄 알았다.




<속울음>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초상치는 며칠 동안 숨이 이상하게 쉬어졌다.
울음을 참고 손님을 계속 쳐야 하기 때문에,
으흐흠 몇 초 간격으로 숨이 몰아서 쉬어졌었다.

장사치는 내내 그렇게 숨을 쉬는걸 보고
남편이 조카를 시켜 청심환 딱 2알 사서 한알은 시누이에게,
한 개는 골목으로 날 불러내어 주면서 하는 말
“당신 몸 어디가 이상한 거 아니야?”
엄마가 돌아가셨는대도 마누라 걱정.

강릉사는 사촌형님
“자네가 시어머닐 너무 좋아해서 속울음이 되어 나오는 거”라고.
그 양반 치매 걸린 시어머니이자 우리 큰어머니를
3-4년간 대소변 받아내며 모시다 돌아가시고 나니
그렇게 서럽게 큰소리로 울던 좀 못생겼지만 마음은 천사같은 양반이었지!




<이대로 돌아가시면>

엄마 이대로 돌아가시면
불쌍한 엄마 인생 생각하며 울어야 할 딸들이 여기 있습니다.
엄마 불효한 자식들 용서마시고
지금이라도 “돈 내 놔라!” “맛있는 거 해 와라!”
우리 할머니처럼 소리 지르고 사세요.
그럼 엄마 가슴에 응어리진 거 조금이라도 다 풀릴 것 아니예요.
엄마 지금부터라도 엄마 마음대로 하고 사시고
보통 엄마들처럼 “어디 구경 좀 시켜주라.” “어디 좀 놀러가자.”
그렇게 딱 한번만이라도 말씀해보세요.
무심한 딸들 옆에 무심한 사위들,
어느 사위가 모시고 나가 맛있는 음식 하나 사주었습니까? 장모님께.
엄마 부디 딸들 생각해서 다 나아 맑은 정신으로 웃고 얘기하며 사시다 가세요.
평균수명까지 사시려면 아직 많이 남았습니다.
이 아침도 꺼억꺼억 울음 삼키면서 이 딸은 빌고 또 비오니
하나님은 다하실 수 있죠!
우리엄마 마음병 먼저 치료하셔서 맑은 정신 돌아오게 도와주세요.




<고사리나물>

엄마 고사리나물  좋아하죠? 나도 좋아해. 우리 딸도 좋아해.
엄마 미역국 좋아하죠? 나도 좋아해. 엄마 손녀딸도 좋아해.
엄마 딸 맞네. 엄마 나 주어온 딸 아니네.




<나는 어떡하라구 엄마>

동네 내과에서 큰 병원 옮기기로 남편과 의논해서 갔더니
굉장히 상태가 안 좋았던 때라
둘째 사위보고 하는 말, “저기 저 사람 참 좋네. 내가 중매를 서야겠다.”
엄마 그럼 나는 어떻하라구?




<시동생>

엄마는 의사 선생님이 자기가 누군지 알겠냐고 물으니
“시동생”이라고 대답한다.
아마 늘 항상 당신을 좋아 한 시동생이 보고 싶었나보다.
영감의 흉을 시동생에게 풀어놓고 싶었을게다.
그러나 30-40년 전에 이미 캐나다로 다 가버렸으니
어디다 내어놓을까?
답답한 가슴을……




<호박죽>

시어머니께 배운 호박죽
친정 어머니 위해 끓였네.
호박껍질 벗겨 푹 삶고
팥과 콩 가려 또 삶고
찹쌀가루 빻아 넣고
온 정성 기울여 맛있게 맛있게 끓였네.
언제 끓여 먹어는지 기억은 아련해.
먹고 싶을 땐 시장 가 사먹곤 했으니까.
이 한 그릇 호박죽
어머니 살 되고
이 한 그릇 호박죽
어머니 피되네.
얼른 얼른 회복되는 어머니 얼굴 떠올려 본다.




<정말 감사합니다!>

오 하나님!
엄마 살려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생명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
거두어 가시는 분도 하나님.

울 엄마 이제부터 단 몇 년만이라도
자식들 손주들 증순주까지
재롱 좀 보시다가 가시도록
하루하루 아주 조금씩 나아지시게 도와주시고
기분이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시게 도와주시고
허리도 비록 굽었을지라도
몸은 노쇠했을지라도
마음만은 기분만은
밝아지고 맑아지고
좋아지시길 이 딸은 눈물로 기도 합니다.

오 하나님 정말 감사합니다.

김순희

2010.09.28 09:13:20
*.160.176.34

좋은 소설책 한 권을 읽은 것 같습니다.
짧디 짧은 설명들 속에 내용은 어쩌면 그렇게나 많이 들어있는지요.
엄마를 향한 미안함이, 딸이기에 맘껏 섬기지 못한 죄송스럼이 저의 고백이 되어 흘러 넘칩니다.
저도 팔순이 넘은 엄마가 아직 이 못난 딸로 인해 이른새벽마다 하나님께 울부짖으며 기도
하고 있기에 엄마 이야기만 나오면 숨이 허걱 허걱 쉬어지고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아
이 글을 울면서 울면서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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