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8:7 (저희가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가라사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인간은 참으로 연약한 존재입니다. 아무리 성령으로 거듭났다하더라도 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유명 목회자도 무명 평신도도, 세상 사람들과 다르지 않게, 죄악 가운데서 허우적거릴 뿐입니다. 인간의 연약성을 일일이 열거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롬6-7장을 다시 읽어봅니다).
목회자의 취약점, 다시 말해 목사들이 빠지기 쉬운 유혹의 함정 중에 3G가 있다고 얼핏 들었습니다. Glory(영광), Gold(돈), Girl(여자)이 그것이랍니다. 목사가 평신도들의 존경과 대접을 가로챔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 황금의 위력에 사로잡혀 십일조와 헌금을 잘못 집행하는 것, 여성의 감수성을 악용하여 성적 욕망을 채우는 것을 경계하는 내용입니다.
이중에서 성관련 범죄도 심심찮게 발생할 뿐 아니라, 그 후속처리가 지극히 비성경적이라는 것이, 한국교회의 현주소이자 치부인 것 같습니다.
성범죄를 범한 목회자들의 행적이 외부로 밝혀지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대부분 쉬쉬하며 덮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물론 가끔 세상에 알려지기는 합니다. ‘에어컨 장 목사’라든가 이민교회의 ‘L 목사’ 등은 목숨을 잃거나 제법 곤욕을 치른 경우에 해당됩니다.
그러나 어쩌다 밝혀지더라도 한국 성도들은 매우 관대한 판정을 내려 버립니다. 방언유행의 시조 J 목사, 독수리 형제라도 되는 것처럼 온 집안이 합심하여 난동부리고 있는 K 목사 등은 성관련 의혹에서도 꿋꿋하게 살아남았고, 전혀 위축되지 않는 괴력을 선보였습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교회가 세상의 잣대보다 더 물러터진 윤리를 강변하게된 것은 어디서 비롯된 현상일까요? 그리고 이런 교회를 보며 비웃고 있는 세상의 손가락질을 왜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신자들이 성경을 극단적으로 오해하기 때문입니다. 즉 성경구절을 자기 입맛에 맞게 자의적으로 해석하고는 그게 정답이라는 듯이 안심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세상 다른 일들과 유사하게, 성범죄 목사를 향한 교인들의 반응은 크게 3가지로 대별됩니다. 첫째는 책임론으로서 당사자가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목사도 사람인데 실수할 수 있고 실수한 자를 용납하자는 용서론입니다. 셋째는 양 견해의 중간자적 태도입니다(사실 셋째는 아무 생각이 없는 것으로서 매우 부정적인 견해라 할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목사들의 성범죄 사건 초기에는 위의 3가지 견해로 나뉘어 왈가왈부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면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주변에서 성범죄 관련 목사가 끝까지 법적 윤리적 또는 신앙적 대가를 지불한 사례를 접할 수 없습니다. 그냥 흐지부지 되어 버리고 맙니다. 서로에게 곤란하고 치부가 되는 내용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러한 귀결은 성경구절을 들이대며 치열하게 논쟁하던 때와 너무나 대조적입니다. 어찌보면 다소 희극적이라 해야 할 듯합니다(세상의 비웃음을 사는 한 가지 이유이지요).
아무튼, 둘째 견해 지지자들이 피의 목사들을 옹호할 때 전가의 보도처럼 용감하게 빼어드는 성경구절이 바로 오늘 본문입니다. “넌 죄 없어? 예수님께서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셨잖아! 너도 죄가 있으면서 이 훌륭하신 목사님께 어찌 감히 돌을 던지려는 게야?”
참으로 위풍당당한 주장입니다. 웬만한 성도는 반론조차 떠오르지 않은 정도의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기 십상입니다. 하지만 이 주장은 참으로 무지몽매한 억측에 불과합니다.
본문과 그 전후에는 놀라운 교훈이 숨겨져 있습니다. 가려져 있는 비밀 중에서 2가지를 밝혀 보겠습니다. 이는 잘못된 문자주의의 유혹을 경계하기 위해서입니다.
먼저, 3절에서는 “간음 중에 잡힌 여인”이라 했고, 4절에는 “현장에서 잡혔다.”고 보충하고 있습니다. 간음은 혼자 범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상대가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간음 현장에서 남자와 여자 둘 다 잡았습니다.
신명기 22:22-29절에는 간음죄에 관한 처벌방법이 나옵니다. 크게 보면 통간과 강간으로 구분되지만, 세부적으로는 4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①유부녀와의 통간으로서 남자와 여자 모두 죽입니다. ②약혼한 처녀와의 통간으로서 역시 모두 죽입니다. ③약혼하지 않은 여자와의 통간은 결혼시키라고 합니다. ④약혼한 처녀를 강간했을 경우는 남자만 죽입니다. 율법은 남자와 여자 양측을 공평하게 처벌할 것을 명령하고 있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육체적 및 사회적 약자인 여성을 더 고려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잡혀온 여인이 유부녀인지 또는 처녀인지, 통간인지 강간인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오직 여자만 끌려왔다는 사실입니다. 율법(신명기)에 따르면 중한 죄를 담당해야 할 남자는 어디론가 빼돌려지고 힘없는 여자만 잡혀왔습니다. 전혀 불공평한 처사입니다.
‘양심의 가책을 받아 돌아간 사람들’(9절)이 왜 돌아갔는지는 성경이 기록하고 있지 않으므로 모릅니다. 좋은 의도로 추정해 본다면, 자신들의 죄악들이 생각나서였을 수도 있고, 아니면 남자는 빼돌리고 여자만 끌고 온 불공평한 처사가 부끄러워서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힘 있는 남자는 빼돌리고 힘없는 여자만’ 정죄하려 했습니다. 불평등 처벌의 전형입니다.
다음, 예수님의 판결에 대한 불완전한 이해입니다. 성도들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11절 상반절)까지만 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본심은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는 것까지 읽어야 바로 알게 됩니다.
예수님의 온전하신 뜻은 단순한 무조건적 용서가 아니었습니다. 반드시 무언가를 이행해야 하는 조건부 용서였습니다. 그 여인은 이후 간음죄를 다시 범해서는 아니 되었습니다.
성도들에게 가장 위험한 현상 중의 하나는, 성경을 끊어서 읽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절대로 자기 입맛에 맞는 부분만 끊어서 읽으면 안 됩니다. ‘성경 끊어 읽기=범죄’입니다.
극단적인 성경 끊어 읽기의 사례를 한곳만 살펴보겠습니다. 마5:28절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너무나 자주 인용되는 구절인지라 모두가 암송하는 구절입니다. 그리고 일부 목사들은 이 구절을 근거로 성도의 성적 순결성을 강조하곤 합니다. 이때 참 우스운 현상이 발생됩니다. 왜냐하면 목사들은 이 구절 이후의 구절은 철저히 외면하고 논리를 전개시키기 때문입니다.
29-30절을 다시 읽어보면 가슴이 서늘해집니다. 요지는 ‘잘못을 범한 신체 부위를 잘라내라.’는 것입니다. 눈이든 손이든 아무것이든 몸에서 분리시키라는 것입니다.
남성과 여성에게는 각기 성징(性徵)을 대표하는 신체기관이 있습니다. 마5:29-30절 말씀은, 성적 범법자들에게서 이 신체기관을 반드시 잘라내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직접 명령입니다.
문자적으로 해석한다면, 요한복음의 ‘간음 여인에 대한 용서’와 마태복음의 ‘간음 절대 금지’는 상반된 명령처럼 보입니다. 어찌 이해해야 할 것인지요!
오직 문자적 해석을 고집할 경우, 위의 딜레마를 해결한 방도가 없어집니다. 분명히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습니다(이를 방지하기 위해 성경은 반드시 전체를 보면서 부분을 해석해야 합니다만 이 문제는 여기서 다룰 주제가 아니므로 생략합니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을 재정리하여 요약한다면 이렇습니다.
첫째, 본문을 근거로 ‘성범죄 목사를 용서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둘째, 왜냐하면 본문에 이어지는 말씀까지 고려하면, 무조건 용서가 아니라 다시는 간음죄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조건부 용서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이처럼 성경해석에 실패하는 이유는 성경을 지나치게 문자적으로 해석하려는 자세에서 기인되는 바, 그 부조화의 예를 마5장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2010년 9월 인터넷 매체 뉴스앤조이는 서울 S교회 J 목사에 관한 ‘성추행’ 의문을 보도했습니다(별지). 기사에 따르면 S교회는 J 목사의 3개월 설교 및 6개월 수찬 금지의 처벌을 결의했다고 합니다.
한국교회의 바른 지도자로 평가되었고 특히 청소년 목회의 희망으로 회자되던 이였기에, 그 당혹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입니다.
J 목사의 행위에 대한 견해들은 위에서 말한 범주 내에서 분분합니다. 그리고 그 결말은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그러나 위에서 말했듯, 뻔한 귀결이 될까 걱정스럽습니다).
한국교회와 S교회에 심히 부끄러운 결과를 초래한 당사자 J 목사의 해명을 듣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은, 이 글에서 집었던 성경구절들의 깊은 교훈에 따른, 참다운 회개이기를 기대해봅니다.
무엇이 ‘참다운 회개’인지에 대해서 다시 의견이 분분하게 나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주 간단하게 정리하고자 합니다.
이 글의 숨은 논리의 하나는 ‘단편적 말씀 인용의 위험성’입니다. 즉, 본문(요한복음)을 근거로 ‘무조건 용서해야 한다.’거나 마태복음을 근거로 ‘범죄한 신체일부를 잘라내야 한다.’고 주장해서는 곤란하다는 뜻입니다.
요한복음과 마태복음의 두 구절은 물론이요 성경의 여타 구절들을 총망라하여 해석할 경우, 간음 목사에 대한 교회의 치리는 이러해야만 합니다. 첫째, 해당 목사의 ‘①참 회개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둘째, 해당교회의 ‘②죄질에 합당한 치리’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함축적으로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최우선적으로 목사직을 사임하고 주님 품에 안기는 날까지 평신도로서 섬기되 평생 다시는 성추행하지 않는 실천’입니다. 이것이 ‘①참 회개 고백’입니다.
해당 목사가 응당 깨달아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몇 개월 자숙하는 듯한 제스처를 보이다가, 좀 잠잠해졌다 싶으면 다시 설교도 하고 목사로서의 직능을 수행하겠다는 불법한 생각, 아예 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 주변 성도들이 깨우쳐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성경에도 없는 ‘용서만능론’을 들이대며 대충 덮어주고 넘어가자는 유혹을 경계해야 합니다. 이래야 교회의 덕이 된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해당 J 목사와 주변 성도들 모두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만약 J 목사를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보호하면 이는 주님께 엄청난 해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성도가 지녀야 할 관점은, S교회의 입장도 아니요 J 목사의 처지도 아닙니다. 주님의 상황입니다. 주님의 영광이 가려졌기에, 그 가림을 제거해야만 합니다. 이 개념이 바로 ‘②죄질에 합당한 치리’입니다.
진정으로 주님을 생각한다면 J 목사가 먼저 목사직 사임과 평신도로의 복귀를 실천하고, 주변 성도들은 이를 온전한(성경적인) 치리로 수용해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라야, 세상 사람들은 크게 실망한 가운데서도 교회를 향한 한 가닥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게 될 것입니다.
J 목사와 S교회, 그리고 한국교회 전체가, 큰 시각에서 이 사건을 바라보고 처리하기를 간절히 기대합니다. 추이를 지켜보겠습니다.
<별지> "S 교회 J 목사, 30대 초반 여성도 성추행"
(출처:http://news2.kukinews.com/article/view / 국민일보 ‘10. 09. 27(월))
국내 대표적인 기독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1만 명이 넘는 청년 성도들이 출석하는 S교회의 담임 J모 목사가 여성도 성추행 관련 의혹을 받고 있다.
19일 인터넷 언론매체인 뉴스앤조이에 따르면 J 목사는 2009년 11월 중순 30대 초반의 여성도를 아침에 자신의 집무실에서 성추행했다. 이 사실은 8개월가량 비밀로 감추어졌다가 올해 7월 한 공중파 방송국 PD의 취재를 통해 드러나기 시작했고 10개월만인 9월 중순 당회를 통해 일부 교인들에게 알려졌다고 뉴스앤조이는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S 교회 당회는 7월10일 리더 모임 이후 교회 안에 떠돌던 성 추행 소문에 대해 J 목사가 사실을 시인하고 사임의사를 밝혔지만 당회는 고민 끝에 ‘3개월 설교 중지와 6개월 수찬 정지’로 징계한다고 발표했다.
J 목사는 8월초에 몇 개월 동안 안식을 갖기로 급작스레 발표했다.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안식기간 동안 1000개의 미자립교회를 찾아 그들 교회에 영적, 물질적 공급을 해 주는 ‘저수지 교회’가 되겠다고 밝혔다.
한편 J 목사와 친분이 두터운 3명의 중진 목회자들은 지난 9월6일 S 교회 관계자들을 만나 ‘J 목사가 피해자와 공동체에 사과하도록 하자’, ‘교회를 사임하고 적어도 1년 동안 상담과 치료를 통해 완전히 회복한 다음 목회지로 복귀하도록 하자’, ‘J 목사가 없는 동안 설교자를 보내주겠다.’ 등을 제시했다. 그러나 S 교회 장로들은 ‘J 목사의 사임건’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J 목사와는 연락이 되지 않고 있는 상태다. 본보도 그와 연락을 취하려고 수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는 하지 못했다. 또한 J 목사와 절친한 목회자와 출판사 관계자들도 사태가 불거진 이후 전혀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알려왔다.
교계에서는 J 목사가 한국교회, 특히 청년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목회자라는 점에서 사건의 파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J 목사를 잘 아는 한 목회자는 “일단 사건이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느니만큼 J 목사가 빠른 시간 내에 입장 표명을 할 필요가 있다”면서 “특히 ‘성추행’이란 용어 자체의 범주가 큰 만큼 보도를 접한 독자들이 작위적으로 해석하지 않도록 성추행의 구체적인 내용을 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목회자는 “지금은 피해자는 물론 한국 교회 전체를 생각하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사건에 접해야 한다”면서 “일단 사건의 진상이 정확하게 알려지기 전까지는 예단하지 말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형제님의 글에 월간 <복음과 상황> 이사장 박종운 변호사가 <복음과 상황> 9월호에 게재한 "실족한 목사님께 드리는 권면의 글"을 보탭니다. 뉴스앤조이에 전재되어 있습니다. http://www.newsnjo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2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