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안녕하세요
여쭙고 싶은 질문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보면
교회의 출석을 중단하거나 경시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깨끗하지 않은 이성교제로
자신을 더럽히고 순결과 동정을 잃는데 주저 않는 많은 형제 자매들을 보게 됩니다.
그런대 이런 형제 자매들은 성령받아 구원의 확신이 있는 자들이면서도
믿음을 완전히 버리지 않지만
이후 돌아온 탕자가 되면 된다는 식으로 잠시 교회를 떠나
있거나 방탕한 이성교제와 신앙생활을 겸하는등 이후에 회계하면 그만이라는 사고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많이 목격하게 됩니다.
그래서 전 그럴 가망성이 있는 형제들을 만날때마다
누가복음. 15장 31절의 탕자의 형을 예로 들어
저는 돌아온 탕자는 그의 상속받은 유산(하나님의 축복)을
소진하여 다시 받을 수 없지만
그의 형은 아버지의 유산을 잃지 않고
성경에 나온데로 아버지가 아버지것은 모두 이제 형의 것이라고
했으니 너도 교회를 떠나지 말고 세상유혹이겨내면
하나님의 축복을 유산으로서 받을것이라고 권면합니다.
(하지만 성경 주석에는 형을 동생이 돌아왔는데도 불평하는 안좋은
신자의 사례로서 비유합니다. 이것 때문에 제가 맞게 설명하는지 혼란스럽습니다)
제가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이 세상이 타락해서
혼전 순결을 지키는 청년 들이 너무 없다는 이야기 입니다.
그래서 전 혼전순결을 잃지 않은 청년들을 권면하기 위해
위의 탕자의 형을 사용하는데 이것이 성경적으로 옳은 해석인가요.
그리고 혼전 순결을 지켜 스스로를 하나님 앞에서 구별한 청년들에게
평등하신 하나님이 주실 축복에 대해서 권면할 지혜있는 말씀을 더 부탁드립니다.
님글을 읽으면서 자판기가 떠오르네요.
자판기는 처음에 보급되었을때 그안에 사람이 들어 있지 않고는 이렇게 사람마음을 잘 알아서 물건을 지급해 줄수 있을까 싶게 신기한 기계였습니다.노인들은 그앞에서 주인장 주인장 음료수 한잔 주시오 하고 애타게 부르기도 했다는군요.
그런데 하나님을 은혜와 용서를 내가 원하는 대로 베푸시는 자판기로 취급하는 신앙이 있다고 하는군요. (저도 제속에서 그런 모습을 많이 발견했습니다마)
커피 한잔 마시고 싶어서 자판기에 돈을 넣었다가도 그사이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지 돈을 다시 뺄수도 있지요.그러다가 또 내 마음과 행동이 바뀌어서
다시 돈을 넣고 버튼 누르면 자판기는 왜 그렇게 돈을 나에게 줬다 뺏었다 해?지금 나 무시하는 거야 ?.기분 나빠라고 하는법 없이 두말않고(?) 원하는 커피를 내어 줍니다.
자판기는 마치 사람이 그안에서 돈받고 커피를 내어 주는 것처럼 인격을 가진 기계로 느껴지는데 절대 인격을 가진 존재는 아니지요.
과학기술이 발달하여 사람이 느끼는 희노애락을 표현하는 로봇까지 개발된 세상이지만 어디까지나 본질적으로는 기계이지요.
그런데 하나님을 이렇게 편리하지만 인격이 없는 존재로 취급하는 신앙이 있는것 같아요.
사람도 자판기 취급하면 기분이 않좋은데.. 우리 아이들이 더 어릴때 아파트에서 만난 어떤 아주머니가 아이가 요만할때 그마나 부모는 행복한 거야. 좀더 커봐. 애들이 부모에게 하는 소리라곤 용돈달라는 소리밖에는 없어 하시면서 쓸쓸한 웃음을 띄시더라구요. 아이가 어릴때는 부모가 기운이 없어 보이면 금방 저도 풀이 죽으면서 엄마 어디 아파?라고 하고 부모가 화를 내면 무서워하기도 하고 부모가 기뻐서 웃으면 저도 덩달아 즐거워하고 하는데 좀더 커면 부모가 기쁨을 느끼던지 슬픔을 느끼던지 안중에 없고(알면서도 무시하고) 오직 저 필요에 따라 자판기 대하듯이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자식 당사자들로 인한 기쁨과 슬픔과 희망과 절망의 감정을 당사자들이 무시하고 나오는데서 오는 (엄마가 나에 대해 뭘 느끼건 난 관심없어요) 마음의 상처가 크다는 것입니다.그것이야말로 엄마에 대한 진정한 무시가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희노애락을 얼마나 내것처럼 느끼고 인정해 드릴수가 있는가가 신앙의 성숙의 척도라고 봐지는데 하나님을 내 기분 내키는데로 은혜와 용서를 뽑아낼수 있는 자판기로 생각하고 그의 인격을 무시한다면 결국에는 아마 하나님으로부터 똑같이 무시당하게 될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살다보면 기쁘고 평안한 날도 있지만 가슴 터지게 슬픈 날이 있고 눈물이 비처럼 쏟아지는 절망의 날들도 반드시 있는데 그때 하나님께 마음을 열고 인격대 인격으로 다가가려고 할때 하나님께서
그래 실컷 슬퍼해라. 그건 니 감정이잖니? 하시는 경우도 있을수 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이신데 그리 하실까 싶지만 하나님은 이렇다 저렇다 인간이 짜맞추는 틀에 반드시 들어가시는 분이 아니시라는 생각을 합니다.
사람도 무생물이나 기계취급당하면 얼마나 기분이 나쁜데 하나님을 기분나빠하실줄도 모르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늘 그렇게 똑같이 서있는 이순신 장군동상과 동격으로 취급하는 것은 실수를 넘어 불경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반드시 죄들에 대한 응분의 댓가가 있다고 봐 집니다.
신앙의 성숙과 회개를 위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그 맛이 좀 많이 심하게 쓸것입니다. 지옥에 데리고 가셔서 영원한 형벌을 주신다는 것과는 다른 의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