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시각장애인을 섬긴 적이 있었다. 처음 그들을 만났을 때 너무도 무서웠다. 눈을 감은 사람들은 괜찮은데 눈을 떴으나 검은 눈동자가 없이 그저 흰자위만 보이는 사람들을 보며 그만 온 몸에 소름이 쫙 끼치는 것이였다. 공교롭게도 그들과의 인사는 피부접촉으로만 해야한다고 설명을 들었다. 소름이 송글 송글 솟아있는 나의 팔을 저들이 하나씩 와서 부비면서 얼싸 안아줄 때 그 부끄러움이란 지금도 지워지지 않는 부끄러움이다. 가뜩이나 촉감이 예민한 저들은 내가 저들을 소름끼치도록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모두 눈치채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시각장애인 구역은 시간이 지나면서 열심이 특심인 구역으로 자라갔다. 점점 더 맹인들은 모여들고 이 어눌한 말로 저들에게 예수님 이야기를 들려주면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기뻐하는 표정들 그리고 기도해 달라고 이런저런 사정 이야기를 털어 놓으며 기도부탁을 서슴없이 하는 저들과 나는 그만 사랑에 푸욱 빠져 버리고 말았다. 나는 저들이 맹인이라는 사실을 자주 잊어서 우스운 사건도 자주 만들어 내곤 했다.
주일엔 기차놀이가 시작된다. 일렬로 서서 앞장 선 내가 기관차 운전사가 되고 저들 한사람 한사람이 기차들인거다. 손을 옆사람의 팔꿈치에 걸치고 그 많은 무리가 성전을 향해 걸어가면 영락없는 기차놀이가 된다. "칙칙푹푹" 하며 외치면 또 장난꾸러기 같은 성도님은 "꽥" 으로 화답한다. 그렇게 웃으며 성전을 향해 걸어가는 우리는 마냥 행복한 어린아이가 되고 만다. 그런 와중에 참으로 용감무쌍한 어느 성도님이 그 기차를 뚫고 바쁜 걸음으로 지나 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 돌아가기 귀찮으니 중간을 뚝 자르고 들어와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지나간다. 잘려진 두 기차는 그만 그 자리에 고꾸라져 넘어져 있다. 다시 일으켜 세워서 손을 친구의 팔굼치에 걸쳐 준다. 보이지도 않는 눈으로 주변을 휘돌아 보는 넘어졌던 두 기차는 또 누군가가 뚫고 들어올까 두려워진 맘이 되어 버린 것 같다.
성전 안에서도 진풍경은 이어진다. 설교는 조용히 들으면 되지만 찬양은 가사를 먼저 알아야만 하는 문제가 생긴다. 가뜩이나 목소리가 작은 나는 고래 고래 소리를 지르며 찬양의 한소절 한소절을 미리 읽어 줘야만 한다. 연신 주변의 인상 지푸린 성도님들께 굽신 굽신 거리며 죄송하다고 표정으로 몸짖으로 사과를 드리면서 입으로는 가사를 소리높여 읽어야만 한다. 가끔 은은히 미소를 머금으며 수고한다고 눈빛으로 말씀하여 주시는 성도님을 보면 달려가서 얼싸 안아 주고 싶을 정도로 고맙고 감사하기 그지 없다.
그런 구역을 목사님은 심방을 한번도 와 주시지 않는 것이였다. 이유를 모르고 자주 목사님께 심방 부탁을 드렸지만 자꾸 미루기만 하시는 것이였다. 몇개월 후 어렵사리 목사님을 모시고 그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기쁜맘으로 달려갔다. 가는 중에 목사님 말씀 " 저들에게 고기를 낚는 법을 가르쳐 줘야지 고기를 줄 수는 없습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고 "목사님! 무슨 말씀이신지??" 여쭈어 보았다. " 저들은 분명히 교회에서 어떤 도움을 받길 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선뜻 심방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말씀하시는 목사님의 설명에 그만 놀라서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6개월 동안 지켜 본 저들은 교회에 무엇인가를 원하기는 커녕 오히려 예수님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늘 생각하고 있었다. 그저 함께 교회의 일원이 된 것으로만으로 너무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저들이였다. 주일 예배 드리고 교회에서 제공해 주는 점심 식사를 함께 하고 거기다가 커피라도 한 잔 함께 나눠 마시는 시간, 그 시간으로 너무도 행복해 하는 저들을 목사님은 너무 오해하시는 것 같아 자세히 말씀을 드렸다. 돌아오는 말 " 집사님은 너무 순진해요, 저들은 그렇지 않아요" 하며 여전히 나의 말을 믿질 않으시는 것이였다.
몇년동안 저들을 섬기다가 이민 오며 헤어질 때 서로 부등켜 안고 울며 애통했던 시간들이 떠오른다. " 미국가서 자리 잡으면 우리 모두 다 불러줘요" 하고 서글피도 울던 저들은 나에게 사랑을 가르쳐 준 선생님들이다. 나를 너무나 섬겨주시던 아름다운 나의 이웃들이다. 정말 보고픈 나의 이웃.
오늘은 더디 심방가셨던 목사님이 생각이 난다. 왜 그들에게 색안경을 짙게 드리우고 바라보셨는지 의아 해 하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