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한흠목사와 박정희대통령 추모예배의 차이점

조회 수 531 추천 수 2 2013.11.12 00:5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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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한흠목사와 박정희대통령 추모예배의 차이점


[질문]


최근에 여러 교회가 연합으로 박정희대통령 추모예배를 드려서 큰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참여 교회들 대부분이 통일교 쪽의 이단인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교회들도 있어서 그냥 넘길 수 없어서 질문드립니다. 또 저희교회에서도 고 옥한흠 목사님 추모예배를 드린 적이 한 번 있는데 이번 박정희대통령추모예배와 무엇이 다른지 목사님의 견해들 듣고 싶습니다

사실 전 추모예배를 옳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대학생으로 교회행사에 이래라 저래라 할 권리는 없지요. 저희 대학부강도사님이 우리 교회 교인이라면 모든 교회행사에 참여하는 것은 의무라고 선포하셔서 이 말에도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신학적인 방향은 동의하지만 이런 부분적인 점에서 무조건 찬성은 못하겠습니다. 그렇다고 그럴 때마다 찾아가서 말했다가는 자칫 신천지로 몰릴 것입니다.

고 박 대통령이 선한 일을 하신 분인 것은 맞지만 왠지 하나님자리에 사람이 들어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이상합니다. 그 사람이 기독교인이라도 말이죠. 눈으로 보이는 큰 업적을 남겨서 그런 것이라면 그런 큰일하기도 전에, 예컨대 이스라엘이나 북한에 채 복음을 전하기도 전에 잡혀 죽은 수많은 이름 모를 선교사님은 큰 인물이 아니란 말인가요? 이스라엘사람들도 모세가 죽고 모세의 추모예배를 드렸나요?

질문을 정리하자면;

1.추모예배가 옳다면 그 이유
2나쁘다면 그 이유 아니면 기타 의견
3.혹시 위대한 기독교인의 추모예배는 허용이 된다면 그이유가 궁금합니다.

[답변]

제사의 두 가지 목적


신자와 제사에 관한 이전 질문의 답변에서 불신자들이 제사를 드리는 이유를 크게 둘로 나눴습니다. 첫째, 조상신이 후손을 잘 보살펴 주었기에 그 음덕에 감사하고 심지어 그 혼이 제사 장소에 와서 후손들을 보고 있기에 최대한의 경의를 표하고 지극 정성으로 대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남아 있는 가족과 친척들이 고인의 생전에 베푼 사랑을 회상하고, 또 그분의 유지(遺志)를 실현하며, 나아가 가족끼리 화목하게 서로 돕고 사랑하며 살기로  다짐하는 뜻입니다.  

신자로선 전자의 이유에는 절대 찬동할 수 없습니다. 모든 인간은 죽으면 구원 아니면 심판의 두 가지 영원한 운명으로 완전히 나뉘기 때문입니다. 중간 회색지대는 없습니다. 더 이상 이 땅의 사람들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가족이나 지인들이 회상 기념하는 일은 빼고 말입니다. 무엇보다 죽은 자가 귀신이 되어 세상을 떠돌면서 남은 자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법은 절대 없습니다. 인생만사의 궁극적 주관자 통치자는 하나님뿐입니다.

이런 두 가지 이유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예가 있습니다. 신자들이 무심결에 간과하는 사항으로 조위금 봉투에나 조문을 할 때에 “고인의 명복(冥福)을 빕니다.”라고 말해선 안 됩니다. 제사의 첫째 이유와 같은 맥락으로 이미 모든 것이 결정된 죽은 자에게 산 자가 복을 빌어줄 필요도 없고 빈들 아무 효력이 없습니다. 대신에 “삼가 조의(弔意)를 표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무방합니다. 유족들이 어서 빨리 슬픔을 이겨내고 힘을 내시라는 위로의 뜻을 전한 것이기에 둘째 이유에 해당됩니다.

예수님이 최후의 유월절 만찬 때에 제자들에게 성찬식을 행하라고 명하면서 그 이유로 두 가지를 들었습니다.(고전11:23-26) 정확히는 예수님은 “나를 기념하라”는 한 가지만 당부했습니다. 제사의 두 번째 목적에 해당됩니다. 주님의 말씀을 한국의 제사에 비교하니까 어폐가 있지만 마침 주제가 불신자에 대한 추모예배라서 순전히 이해를 돕기 위한 뜻입니다. 주님의 뜻도 이미 구원을 받은 신자로선 당신의 십자가 은혜를 회상하여 진정으로 감사하고 그 뜻에 상응하여 신자답게 거룩하게 살기로 헌신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그 기념의 의미 안에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고, 아니 더 중요하다고 풀어 설명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죽은 후에 구원과 심판으로 영원히 갈리는 일반 사람과는 다르다는 뜻입니다. 영원히 살아계신 하나님으로서 다가올 모든 세대 모든 인간들의 삶을 통치하고 그 영원한 운명을 주관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죄에서 구원으로 이끄는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기에 성찬식을 통해 십자가 복음을 불신자에게 열심히 전하는 일에 충성할 것을 다짐하고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본 주제와 연결하면 성찬식의 의미는 예수님은 인간이 아니라 이 땅을 통치하시는 성육신하신 하나님임을 성도들이 모여서 기념한다는 것입니다. 성찬은 그래서 주님이 돌아가신 날이나 부활절에만 거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을 하나님으로써 경배하고 무엇보다 복음을 확장하려는 목적으로 언제 어디서든, 심지어 매주일 마다 거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통치와 구원의 사역이 일 년에 한번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지속되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직접 목격한 제자들에겐 성찬식의 주님을 기념 즉, 추모한다는 의미가 피부에 와 닿았을 것입니다.  
    
신자와 추모 예배

“모세의 죽을 때 나이 일백이십 세나 그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평지에서 애곡하는 기한이 맞도록 모세를 위하여 삼십 일을 애곡하니라.”(창34:7,8) 모세의 장례식을 기록한 구절입니다. 삼십 일을 애곡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였기에 보통 일주일 거행하는 일반인과 달리 한 달이나 장례를 치렀습니다.

그러나 한 달 내내 장례식만 거행했다거나, 시신을 땅에 묻지 않았다는 뜻은 아닐 것입니다. 분명히 애곡하는 기한이라고 했습니다. 애곡의 뜻이 무엇입니까? 고인을 회상하며 기념하는 것 즉, 추모(追慕)하는 것입니다. 추모의 뜻은 추억하고 사모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를 존경하고 아쉬워하긴 했어도 숭배까지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또 그 기간 내내 통곡만 한 것도 아닐 것입니다. 자기들의 순탄한 가나안 여정을 위해서, 또 새로 세운 지도자 여호수아를 위해서 여호와의 온전한 인도와 간섭을 소원하며 기도했을 것입니다.

쉽게 말해 한 달의 장례기간 동안 “경배와 헌신은 여호와께”, “존경과 추모는 모세에게” 돌렸다는 것입니다. 신자의 추모예배가 불신자의 제사와 가장 구별되는 특성입니다. 그 절차나 의식보다는 그 의미와 내용인데, 절대로 망자를 기념만 하지 숭배하지 않는 것입니다. 유일한 예외인 예수님을 위한, 엄밀히 말해 신자를 위한, 성찬식만 빼고는 말입니다.    

“아브람에게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였더라 그가 남방에서부터 발행하여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전에 장막쳤던 곳에 이르니 그가 처음으로 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창13:2-4)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으니라.”(창13:18)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언제 어디서나 여호와를 자기 삶의 중심에 두었습니다. 또 안식일 외에도 인생의 중요사가 생길 때마다 여호와께 감사와 헌신의 예배를 드렸습니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하나님이 주관하실 뿐 아니라, 특별한 일에는 더 많은 은총과 권능을 받아 누렸음을 고백, 감사, 찬양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랑하는 부모, 형제자매의 죽음은 너무나 큰 인생사입니다. 삶과 죽음은 오직 하나님의 소관입니다. 나아가 그를 당신의 자녀로 삼아 당신의 영원한 품으로 받아주심은 인생으로 너무나 큰 영광입니다. 죽은 자는 말을 못합니다. 아니 이미 하나님의 영광 안에 들어가 거룩, 거룩, 거룩 찬송하고 있기에 살아 있는 가족보다 더 큰 기쁨과 만족 가운데 거하고 있습니다. 살아 있는 신자가 죽은 신자를 위해서 해줄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따라서 추모예배는 원칙적으로 남아있는 가족들을 위한 예배입니다. 생일이 돌아오면 가족들이 잔치하고 예배드리듯이, 가족의 기일이 오면 죽은 자에 대한 추모의 정에 더 크게 사로잡힙니다. 아브라함이 인생의 중요한 일이 생길 때마다 예배를 드렸듯이 신자는 마땅히 제사가 아닌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가족과 친지끼리 죽은 자를 회상 기념하며 죽음과 영생의 의미를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 안에서 되새기며 영생을 주신 주님께 감사하면서 영생을 소유한 자답게 천국 가는 그날까지 예수를 전파하기로 헌신하는 예배입니다. 누차 강조하지만 고인을 추모하고 하나님께 감사 헌신하는 예배이지 고인을 숭배하는 제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큰(?) 종의 추모예배

짐작컨대 질문자께선 이미 죽은 한 인간을 두고 공개적으로 여러 명이 모여서 그 업적을 내세우니까 즉, 인간을 숭배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같으니까 뭔가 비성경적이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이는 죽은 자가 신자인지 불신자인지에 따라 구별해서 접근해야 할 것입니다.

먼저 신자가 예수를 믿어 세례(침례)를 받은 후에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하다가 죽었다면 누구라도 추모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거기에 큰 자와 작은 자의 구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추모예배의 근본 목적이 살펴본 대로 죽은 자의 업적을 자랑하고 그 사람 자체를 높이려는 뜻이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고 옥한흠 목사의 추모예배도 당연히 그러합니다. 생전에 담당하셨던 교회의 교인들뿐만 아니라 한국기독교계의 관련자들이 그분을 존경하고 추모하기 위해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 예배에 참석자 모두는, 온전한 믿음을 가졌다면, 그분을 숭배하거나 그분을 자랑하고 높이려는 뜻으로 모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이 교회와 성도와 교계에 끼친 의로웠던 영향력들을 본받고, 또 그가 죽기까지 원했던 일들이 있으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선하게 이뤄지기를 기원하고 실행할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십자가 복음의 은혜를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확고히 기념하고 더욱 널리 전파하기 위한 것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추모예배는 죽은 신자가 아닌 살아남아 있는 신자들을 위한 예배입니다. 그래서 그 교회의 성도라면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는 한 마땅히 참석하는 것이 좋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교회가 한 마음으로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힘을 보탠다는, 교회의 모든 행사에 참석받기를 요청 받았다면 그 교회 교인은 성실하게 충성해야 합니다. 혹시라도 죽은 자나(추모예배의 경우), 담임목사의(기타 모든 교회행사)를 예수님보다 앞세우는 개인우상화나 교회이름 높이기가 이뤄질까 세심히 주의할 필요는 있지만 말입니다.

신자에게, 특별히 목회자에게 큰 종과 작은 종 같은 구별은 없습니다. 사람들이 편의상 혹은 존경과 겸손의 의미로 그렇게 부르긴 해도 말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전부 다 큰일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전적으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고 신자나 목사는 그 일에 쓰임 받는 도구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작은 일에 충성하고 소자를 섬기라고 했습니다. 큰 목회자는 추모예배를 해야 하고 이름 없는 선교사는 안 해도 된다는 법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일찍 받은 신자 가족, 친지를 둔 신자라면 그 기일이 돌아오면, 꼭 기일이 아니라도 특별한 일이 있을 때에 그분을 기념하며 예배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불신자를 위한 추모예배

반면에 불신자를 위해 추모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원칙적으로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생전에 큰 업적을 남겼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당사자가 이미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는 이유 때문만이 아닙니다. 그가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기에 그를 위한 예배도 하나님과 아무 연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받지도 않을 예배를 드려선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신자가 절의 행사에 어떤 모습으로든, 예컨대 주지 스님이 가족이라 단순히 축하하는 뜻으로 참여했다고 부처님의 자비를 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광대하고 거룩한 통치 속에만 있지 않습니까?

무엇보다도 그가 생전에 이룬 업적도 자기 힘으로 행한 것이지 하나님의 인도를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죽은 본인의 생전에 그런 믿음은커녕 인식조차 전혀 없었습니다.  나아가 예배는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리스도의 빛과 영광이 밝게 드러나야 하는데 그런 의미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죽은 자를 높이거나 그의 믿지 않는 가족이나 친지들을 위로하는 목적뿐입니다. 불신자 가족이 죽으면 그 기일에 신자 가족이 예배를 드릴 수는 있지만, 죽은 자를 위한 추모예배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남은 가족들의 믿음과 소망을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 안에서 다시 견고히 해서 주님의 자녀답게 충성하겠다는 헌신예배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추모예배라는 용어도 신자가 죽었을 때만 제한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신자로선 집안 제사에 적극 참여할 수는 없습니다. 서두에 말한 두 가지 목적 중에서 전자에는 절대 동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죽은 자에게 절을 하거나, 비기독교적 사상에 근거하는 제사절차에 참여할 수는 없습니다. 망자(亡者)를 숭배 경배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존경하고 좋아했다는 표시로 절을, 비유컨대 설날이나 생신에 부모님께 절하는 것과 같은 차원에서, 할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이 볼 때에는 귀신을 믿고 숭배한다고 오해할 수 있기에 아무리 선의라도 그래선 안 됩니다. 가족들과의 화목과 전도를 위해서 참여는 하되 기도로 그 모든 절차에 대신해야 합니다.

특별히 목사나 교회가 공식적으로 불신자로 죽은 자의 추모 예배의 인도는 물론 참석도 해선 안 됩니다. 고인에 대한 예의와 존경을 안 갖추는 무례보다, 하나님의 뜻이 세상에 왜곡 모순되게 전해지는 것을 막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신자는 몰라도 목사가 개인 자격으로, 예컨대 가족으로서 참석만 하는 것도 가능한 금해야 합니다. 목사라는 직분 자체로 이미 공인이 되었고 하나님과 기독교 진리를 대변해야 하는 위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얼굴에 침 뱉는 목사들

이번 박정희대통령의 추모예배는 처음부터 끝까지 잘못된 것입니다. 교회가 연합으로 나서서 기독교, 성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행될 행사가 절대 아닙니다. 고인은 분명히 세상에 불교신자로 알려져 있었지 기독교 신자가 아니었습니다. 비밀리에 세례 받은 적도 없습니다. 만약에 그랬다면 작고하자마자 추모예배를 드렸어야 합니다. 그것도 가족과 극히 일부 친지만 참석하는 소모임으로 말입니다. 공식적 행사로 드리면 자칫 그분이 갖는 사회적 위치와 영향력 때문에 알게 모르게 그분을 높이고 우상화하는 일이 되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옥한흠 목사의 공적인 추모예배는 그분의 사회적 업적이 아니라, 주님의 종으로써 주의 일에 헌신한 것만 기념하고 본을 받자는 것입니다. 추모예배는 어디까지나 하나님이 거룩하게 통치하는 그분의 나라 안에서 행해지는 그분을 위한 예배입니다. 정치, 사회적 업적을 기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옥목사를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사회적, 인간적, 도덕적인 측면에서,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 발가벗은 심령을 두고 봤을 때에는 옥목사와 박대통령 간의 우열은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만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안에서 살았던 옥목사님의 일생을 되돌아보는 것은 추모예배입니다. 반면에 하나님 밖에서만 행했던 박 대통령의 추모예배는, 그 업적이 높이 평가 되든 도덕적 정치적 죄라고 비난하든 간에 아예 어불성설인 것입니다. (제 개인적으로 그 두 분과 두 분 일생의 공과를 폄하 혹은 숭모 둘 중 하나의 편중된 입장으로 말씀드리는 것이 아님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번 추모예배는 교회가 세상 정치에 편승하는 모습을 보였기에 더더욱 잘못되었습니다. 단순히 그분 업적을 기념하는 예배를 드리려 했어도 죽자마자 그랬어야 합니다. 그럼 이단이라는 비난을 받아도, 이번 같이 아예 몰상식한 짓을 행했다고 조소와 멸시까지는 안 받을 것입니다. 불교사찰에선 박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를 위해서 매 기일마다 추모제를 지내왔습니다. 불교 신자인 이유도 있었겠지만, 불교는 현실의 형통과 복을 비는 종교이기 때문에 그분의 음덕으로 한국이 잘 살게 된 것에 대한 감사의 뜻도 포함된 것입니다. 이렇게 상식적 논리적 비교만 해도 교회가 그분을 위해 추모예배를 드리는 것은 잘못이지 않습니까?

거기다 마침 큰 영애가 대통령이 된 시점에 그러니 목사들이 자기 얼굴에 침 뱉기를 자청한 꼴입니다. 아니 감히 하나님의 얼굴에 그렇게 했습니다. 시류와 정치적 영향력에 편승하여 교회와 목사의 이름을 내고 뭔가 이익을 얻겠다는 심보로 밖에 비취지 않습니다. 차라리 청와대에서 조용히 혼자 고인을 회상 기념한 박대통령의 처신이 그런 목사들보다 종교적으로는, 영적 차원에서가 아니라, 더 논리적 합리적입니다.

거기다 예배에 참석한 어떤 목사가 하나님도 독재했으니 한국은 독재를 해야 좋다는 식으로 설교했다니, 저도 목사지만 도대체 목사들이 왜 이런 짓거리를 행하는지 정말로 통탄할 노릇입니다. 정치적 시비를 따지기 이전에 하나님을 바로 전해야 할 목사가, 어떤 이유로든 그런 자리에 참석했으면 복음을 전하는 기회로 삼아야 할 텐데 하나님을 왜곡되게 소개했으니 말입니다. 하나님은 선악과에서부터 골고다 십자가까지 절대로 독재하는 분이 아닙니다. 오직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의 목숨까지 죄에 찌든 우리를 위해 내어준 분입니다.

그들에게 한 가지 궁색한 변명은 있을 것입니다. 둘째 영애 박근영씨가 최근에 기독교로 개종(?)하여서 제사를 드릴 수 없기에 교회가 대신 추모예배를 드려주었다고 말입니다. 그럴수록 올바른 목사라면 십자가 구원에 드러난 성경의 진리를 제대로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불신자를 위한 추모제사는 드릴 수 없고 대신에 집안 제사에 참여는 하되 기도만 하라고 말입니다. 정 제사에 참여하기 싫다면 따로 개인적으로 집에서 그 자매님이 그리스도를 닮아가고 복음을 확장하는 일에 헌신하겠다는 목적으로만 예배를 드리자고 말입니다.

집안 제사에 참여하기 싫다는 것이 정말로 종교적 영적 이유였다면 다행이련만, 혹시라도 가족 간의 불화 때문이라면 그 자체로도 이미 신자로서 잘못한 것입니다. 제가 신자가 불신자 가족의 제사에 참여하되 기도만 하라고 권하는 것은 가족끼리 화목하고 주님의 사랑으로 섬길 뿐 아니라 삶과 죽음을 자연스레 되돌아보는 그런 기회를 통해서 복음을 전하라는 뜻입니다. 이번 추모예배는 박근영 자매의 개인적 측면에서 따져 보아도 기독교를 믿어보겠다고 갓 결심한 한 불쌍한 자매를 봉사가 봉사를 인도하여 함께 구렁텅이로 빠지는 꼴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결론으로 제시한 세 가지 질문은 상기에 설명한 내용으로 충분히 답이 되었을 것입니다. 죽은 신자를 위한 추모예배는 고인의 개인우상화나 평생업적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만 기념하고 산 자들이 더욱 신자답게 거룩하게 살며 그분의 나라를 확장하는데 헌신하는 예배이기에 드려도 됩니다. 추모예배에서 큰 목사나 평신도의 구별은 아예 있을 수 없습니다. 추모예배를 잘못 알고 가르치는 것이 문제이며, 이번처럼 불신자를 위해서 그것도 다른 불순한 의도로 예배드리는 것은 너무나 큰 잘못입니다.

10/30/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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