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동계올림픽의 화제는 단연 완벽한 연기를 펼쳤던 캐나다 페어스케팅 팀이 오히려 실수한 러시아팀에 금메달을 뺏기고 은메달에 머문 사건이었다. 프랑스 여자 심판의 압력을 받았다는 고백이 터져 나오자 심판 판정에 대한 비난의 여론이 들끓고 캐나다가 강력 항의하였다. 급기야 재심의 끝에 금메달을 공동으로 수여하기로 결정 났다. 일등이 둘이고 이등이 없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목사가 할 말은 아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캐나다 팀이 차라리 금메달을 받지 않고 정중하게 거절했으면 더 좋았었을 것 같은 아쉬움이 남았다. 일단 내려진 판정을 승복하라거나 러시아팀의 입장을 살려주라는 선한 뜻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잘못된 판정 이후 사태가 수습되기까지 전세계 메스컴은 오직 이 캐나다팀만 좇아 다니기 바빴기에 재심 판정이 이뤄지지 않아도 이번 동계 올림픽의 최고 영웅이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는 뜻이다. 아마 올림픽 후 인터뷰, 순회 공연, 수기와 영화로 더 유명해지고 현실적인 성공이 보장 되었을 것이다. 거기다 만약 금메달마저 반환했다면 더 큰 화제 거리가 되어 자신들의 상업적 가치는 천정부지로 치솟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당당하게 일등으로 인정 받았으니 더 이상 세인들이 열광할 이유도 없어졌고 금전적으로도 엄청난 거금을 만질 수 있는 찬스를 놓친 것 같다.
같은 주 멀리 런던에선 한국의 삼성전자가 상당한 거액에 해당하는 휴대폰이 도난을 당했다. 이 사건이 메스컴에 보도되자 오히려 삼성휴대폰이 값은 비싸지만 성능이 월등 우수하다는 것이 자세하게 알려져 주문이 폭등했다고 한다. 문자 그대로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되었다.
이처럼 세상일이란 아무리 실패한 것 같아도 심심찮게 화가 복이 되고 또 아무리 성공한 것 같아도 복이 화로 바뀐다. 언뜻 보기에는 순전히 우연의 일치 같아 어느 누구도 그 발단과 과정과 결과를 알 수 없다. 그러나 만약 화가 복이 되리라는 것을 미리 알 수 있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어떠한 화가 닥쳐도 두렵지 않고 오히려 화가 올수록 어떻게 복으로 바뀔지 설레이며 기대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나님은 분명히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으로 이끄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나 그 약속에는 조건이 하나 달려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에게만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그럼 신자가 환난 중에 가장 먼저 할 일은 그것을 없애달라고 기도하는 것이겠는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자신의 소명을 실천하는 것이겠는가?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5:3,4)
2/17/2002 교회 주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