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서 미국으로 유학 온 한 남자고등학생이 있었는데 유학 온 사정이 미국 대학을 진학하겠다든지 영어를 배우겠다는 통상적인 이유가 아니었다. 특이하게도 일본에서 학교 갱들과 다툼이 생겨 그들이 아들에게 복수할까 두려워한 부모가 한 학기만 잠시 미국에 피신해 있으라고 보낸 것이었다. 그런데 그 부모가 처음 약속과는 달리 고등학교를 미국에서 졸업하라고 했다고 하면서 그 학생은 “자기는 부모에게 속았다(I was cheated by my parents.)”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에게 거짓말(lie)과 속임수(cheating)의 차이를 아느냐고 물어보았다. 속임수란 사기 도박을 하거나 시험칠 때 커닝하는 것처럼 상대로부터 어떤 유익을 얻으려고 처음부터 계획해서 속이는 것이다. 반면에 거짓말에는 그런 고의성 없이 어쩌다 할 수 없이 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 남에게 유익을 주기 위해 하는 선의의 거짓말도 있을 수 있다. 또 부모란 자식에게 거짓말은 할 수 있어도 절대 속임수를 쓰는 법은 없다고 그에게 설명해 주었다.
유대인들의 지혜서인 탈무드에 의하면 거짓말을 해도 죄가 되지 않는 두 가지 경우를 규정해 놓았다. 첫째 남이 이미 어떤 물건을 샀으면 아무리 잘못 샀더라도 참 잘 골랐다고 말해주는 것과, 둘째 아내를 얻은 후에는 정말 미인을 얻었으며 현숙한 아내가 될 것이라고 칭찬해주는 것이다. 이 경우는 상대의 유익을 위한 선의의 거짓말 차원을 넘어선다. 이미 저질러진 일은 그 일의 실제적인 선과 악을 떠나 앞으로 어떻게 적용하느냐가 더 문제라는 지혜로운 말이다. 이 남학생의 부모도 이미 벌어진 갱들과의 싸움에서 피신 시키는 것보다 장래 일이 더 걱정 되어 거짓말을 한 것이었다.
신자가 원인 모를 고난을 겪게 되면 꼭 하나님에게 속은 듯한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잘 믿고 봉사 많이 하고 죄도 짓지 않았는데 왜 계속 이 꼴인가 싶다. 그런데 인간인 부모도 절대 자식을 속이지 않는데 과연 하나님이 우리를 속이시겠는가? 우리의 앞날을 꿰 뚫어 아시는 하나님이 인간의 경우라면 신자의 유익을 위해 선의의 거짓말을 해야 할 경우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절대선이신 그 분은 거짓말을 할 수 없다. 그래서 그런 경우에는 단지 침묵하고 있기에 우리가 알지 못할 따름이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소망을 갖고 인내하는 길뿐이지 않는가? 그 분은 우리의 앞날을 꿰뚫어 아시는 정도가 아니라 우리의 앞날을 당신이 계획하셨고 또 그 길로 우리를 직접 인도하고 책임지는 분이지 않는가?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버리라”(벧전5:6,7)
4/14/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