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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眞)과 미(美)
| 現代文보기 | 原文보기 | 성서조선 第 87 號 (1936年 4月)
“그러므로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는 무엇을 먹고 마시며 살아갈까, 또 몸에는 무엇을 걸칠까 하고 걱정하지 마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지 않느냐? 또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느냐? 공중의 새들을 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거나 거두거나 곳간에 모아들이지 않아도 하늘에 계신 너희의 아버지께서 먹여주신다. 너희는 새보다 훨씬 귀하지 않느냐? 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목숨을 한 시간인들 더 늘일 수 있겠느냐? 또 너희는 어찌하여 옷 걱정을 하느냐? 들꽃이 어떻게 자라는가 살펴보아라. ......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산상수훈을 강해하는 한 선교사가 이 말씀을 낭독한 후에 ‘얼마나 아름다우냐(Isn't it beautiful?)’고 물을 때에 우리는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분노를 느꼈다. 성경은 아름다운 사상을 미끈한 문장과 보기 좋은 구문으로 표현한 데에 그 진가가 있는 것이 아니다. 결코 아니다. ‘아름답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진짜냐, 가짜냐’의 문제다. 진리냐? 아니냐? 이것이 문제의 시작이며 끝이다.
굉장한 건축의 교회당이 없고, 명장의 벽화가 없고, 미인들의 찬양대가 없으며, 자유자재의 억양(intonation)을 구사하는 청산유수 같은 교직자의 기도가 없어도 좋다. 성서를 배우며 그리스도를 믿으며 사는 데에만 우리의 태도가 있다. 그래서 세간에 유행하는 기독교와 구별하기 위하여 무교회 신앙이라고도 불리거니와 실상은 예수의 종교가 이 밖에 또 무엇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