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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조선 기독교
| 現代文보기 | 原文보기 | 성서조선 第 85 號 (1936年 2月)
장래를 말하려니 과거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기독교가 이 땅에 전래된 지 50주년을 기념하는 때에 길선주 목사와 같은 조선 기독교계의 중진이 세상을 떠나게 되니, 우리에게는 더욱 과거 50년과 미래 50년을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50년 포교에 30만 또는 50만에 달하는 성도는 그 어느 한 사람도 성령의 축복이 없이 된 이는 없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 교회의 50년 역사는 확실히 은총의 역사였다.
민족적으로 교육이 보급되지 못하고, 사회의 질서와 조직이 없었고, 전반적으로 빈궁하고, 경박한 것 등등의 우리의 결점을 헤아릴 때에, 과거 50년 기독교 역사는 온전히 은혜로 된 것이요, 이적으로 된 것이다.
이렇듯이 은혜로 된 역사를 가장 잘 구현한 한 사람은 고 길선주 목사일 것이다. 길 목사가 인도하던 부흥회 광경을 어떤 외국인이 기록한 것을 보자.
‘예배당 안에는 전능한 이의 얼굴이 나타났다. 순결하고 거룩한 불에 타는 얼굴, 그것은 완전히 예수 자신이지 길 목사가 아니었다…..’
평양의 장대현(章臺峴)교회에서는 이런 광경이 한두 번뿐이 아니었다 한다. 또한 이와 같은 성신의 역사로써 각처에서 부흥회를 인도한 크고 작은 ‘성신 목사’ 또는 ‘부흥 목사’ 는 조선 팔도에 이루 헤아리기 힘들만큼 많았다.
과거의 조선, 무식하고 어두웠던 시대에는 성신의 역사로 오는 길이 확실히 은혜의 길이었다. 그러나 반세기가 지난 오늘 이후로는 그 길만이 반드시 유일의 길이 아니다. 오히려 이제 우리는 ‘성신의 역사’ 라는 것을 주의 깊게 경계하여야 할 시대에 처하였다.
1907년의 대부흥은 원산에서 시작해서 평양으로 파급되었다. 근래의 사이비 성신의 역사도 원산에서부터 평양에까지 만연하고 있다.
성신의 역사는 귀중한 것이다. 그러나 잘못 빠지면 평범한 성도까지도 무당과 다름없는 사이비 ‘선지자’에게 무릎을 꿇게 된다.
이는 성신이라는 미명하에 열만 돋우고 이성의 상식을 억압하는 데서 발생하는 일종의 유행성 열병이다.
이 따위 열병 환자는 평안도 지방뿐만이 아니라 이미 서울 한복판과 충청, 호남, 영남지방에까지 퍼져 있다.
이제는 이러한 기독교를 앞세운 무당의 무리들을 정리하여야 하며, 성신 열병환자를 퇴치하여야 한다.
과거는 과거대로 좋다. 오순절의 성신 강림이 없었더라면 초대 기독교의 활기는 없었을 것이다. 20세기 벽두의 대부흥이 없었더라 조선 기독교의 오늘도 없었을 것이다. 사람이 성신으로 인해 ‘거듭 남’ 이 없으면 예수를 구주로 믿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어떠한 위험도 무릅쓰고 외친다. “앞으로 50년은 이성의 시대요, 연구의 시대이다” 라고. 일시적 응급처방으로써 부흥회에서 열을 구하지 말라. 오히려 냉수를 끼얹으며 열을 식히라. 학도적 양심을 배양하며 학문적 근거 위에 신앙을 재건하라.
지나간 50년간 조선 기독교도가 대체로 ‘성신 타입’이었다면 앞으로는 ‘학구 타입’이 되기를 우리는 기대한다. 그러나 전자가 은혜로 되었던 것처럼 후자도 은혜로 되어야 할 것은 물론이다.
학문과 신앙이 완전히 어우러진 합금이 되어야 앞으로 닥쳐 오는 순교의 세대에 능히 견디어 설 수 있다.
선생의 외침이 아프게 와 닿는 오늘의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좋은 글 소개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