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직접 가르쳐준 또 다른 이름
하나님이 당신의 이름을 직접 가르쳐준 경우는 모세에게 ‘내다’라고 한 것이 유일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경우가 성경에는 한 번 더 나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은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에 들어갔으나 온전한 국가체계를 이루지 못해서 주변국들, 특별히 블레셋에게서 많은 시달림을 받았습니다. 단 지파의 마노아라는 사람의 아내가 잉태를 하지 못했는데 어느 날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났습니다. 아들을 낳는데 그가, 훗날에 괴력의 삼손이 됨, 블레셋에서 이스라엘을 지켜줄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아내와 남편은 사자의 정체가 궁금해져서 뒤늦게야 당신의 이름이 무엇인지 질문했습니다.
그러자 사자는 우리말로 “기묘”라고 대답해주었습니다.(삿13:18) 이 또한 정식 이름이 아닙니다. 히브리어로 ‘필위’인데 “비밀스런, 이해를 넘어서는, 경이로운”의 뜻입니다. 그래서 영어성경은 secret, beyond understanding, wonder 등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경이로운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는 단순히 천사가 아니었습니다. 천사는 가브리엘, 미카엘 같이 고유의 이름이 있습니다. 이름이 없는 하나님이 직접 마노아 부부에게 임재한 것입니다. 실제로 마노아가 그 앞에서 번제를 드렸더니 불꽃 가운데로 하늘로 승천했습니다. 그렇다고 이 사자의 권능이나 승천한 모습이 신기해서 경이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시편 139편 기자는 하나님이 나의 앉고 일어섬 즉, 모든 행동과 입술의 말과 마음의 생각까지 속속들이 알고 계신다고 실토했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나를 그렇게 다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니까 너무나 신기하고 기쁘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늘에 올라가도 바다 끝까지 가도 그분의 얼굴을 피할 수 없고 그분은 나와 항상 함께하면서 보호 인도해주신다고 했습니다. 지금 마노아에게 아들이 없는 아픔과 이스라엘 민족이 블레셋에게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모든 사실을 알고 계셨고 그 구원을 약속해주셨으니까 경이하신 분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정말로 경이로운 존재입니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하고 있어도 다 알고 계십니다. 아무리 고난 중에 힘들어 하거나 죄에 빠져 있거나 실망하여 좌절해 있어도 ‘내다“라고 하시며 아버지로서 다가와 구원해주십니다. 그 후에도 삼손을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자로 세워주었듯이 거룩하고 영광스런 인생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만약 단순히 하나님이 아닌 ‘하느님’을 믿으면 얼마나 착하게 살았는지 죽고 난 후에 채점만 해서 구원과 심판으로 나눠집니다. 이 땅에서 사는 동안에는 어떤 고난과 슬픔과 상처를 겪고 있는지 모르고 아무 조치도 해주지 않으니까 그 하느님과는 아무런 관계도 형성되지 않습니다. 그럼 평생을 가도 경이로운 존재가 절대로 될 수 없습니다. 지금 불신자들의 잘못을 탓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경이로운 하나님을 모르니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반면에 신자는 하나님의 ‘내다’와 ‘경이’라는 이름의 비밀과 의미를 아는 자입니다. 그럼 아침마다 경이로운 하나님이 나를 꿰뚫어 아시기에 당신의 경이로운 은혜와 권능으로 이끌어주질 것이므로 오늘 하루도 경이로운 날이 될 것을 가슴 설레는 기대로 맞아야 합니다. 실제로 범사에 감사하며 항상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하나님이 ‘내다’라고 하시면서 경이롭게 바로 곁에서 인도하고 있음을 확신합니까? 아니 실제로 체험하고 있습니까? 그래서 그분과 함께 걸어가고 있습니까?
(5/19/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