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경이로운 이름
하나님은 모세에게 당신의 이름을 ‘내다’라고 직접 가르쳐준 주었습니다. 그 외에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에게 ‘경이’(Wonder)라고 가르쳐주었는데 놀랍게도 그 이름이 예수님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성경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장차 한 아이가 태어나 인류를 구원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사9:6) 그 메시아의 이름을 ‘기묘자’라고 호칭했는데 원어로는 마노아에게 가르쳐준 경이와 똑같습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는 경이로운 분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에게 그런 이름을 붙인 이유가 무엇일까요? 인간이 도무지 행할 수 없는 여러 기적을 베풀었고 죽은 자도 살리고 특별히 본인이 예언한 대로 십자가에 죽으셨다 사흘 후에 스스로 부활하셨기 때문입니까? 물론 그렇지만 그것뿐 아니라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다른 모든 종교는 인간이 쌓은 선행에 점수를 매겨서 합격해야만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칩니다. 인간이 구원을 얻으려고 하늘로 올라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기독교 그 중에 개신교만 유일하게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러 이 땅에 직접 내려오셨다고 가르칩니다.
개신교만 제외하고 모든 종교가 인간의 자력구원을 주장한다는 것은 인간이 상식과 이성으로는 그것밖에 생각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 땅에 직접 오셨고 죄인을 대신하여 그것도 하나님 당신께서 그 모든 죄 값을 감당하고 죽으셨다는 것은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는 너무나 경이로운 구원입니다.
한 번 정말 진지하게 고민해 보십시오. 내 스스로 노력하면 인간 사회에서 겉으로 드러나는 측면에선 평균 이상으로 선하다고 인정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절대적인 선 그 자체이신 하나님 앞에 나의 진짜 영적실체를 발가벗겨 내놓았을 때 나를 과연 의롭다고 칭찬 아니 인정이라도 해주겠습니까? 세상 사람들도 나이를 먹을수록 모든 잘못이 내 탓이고 내가 죄인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기준과는 정반대라고 인정하고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러 이 땅에 내려오신 것이 경이롭다고 해서 단순히 그분께만 감사 찬양 경배를 돌리는 것으로 그쳐선 안 됩니다. 내가 이미 그분의 자녀가 되어서 그분의 완전한 보호를 받고 있으며 내 계획보다 더 영광스런 그분의 계획 가운데로 이끌고 있으며 천국의 영생이 보장되어 있음을 확신하고 기뻐하고 자유롭고 평안하게 살고 있어야 합니다.
쉽게 말해 이미 바뀐 내 존재와 신분이 너무나 경이롭다는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짓겠다고 하자 하나님은 내가 너희들 집을 지어주지 너희가 내 집을 짓는 것이 아니며 내가 너희 가운데 항상 함께 하면서 한시도 떠난 적이 없지 않느냐고 꾸중 아닌 꾸중을 들었지 않습니까?
우리가 고난과 슬픔과 불법 가운데 있으면 하나님이 더 슬퍼하고 안타까워하십니다. 신자는 세상과 죄악과 사람들 앞에 당당하게 맞서며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또 그럴 때에 넘치도록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경이로워져야 예수를 믿는 믿음입니다.
실감나게 간단하게 비유해보겠습니다. 서울대학(천국대학)에 입학할 실력이 도무지 안 되는데도 평생토록 노력하며 헛되게 일생을 살아가야할 뻔했는데, 이젠 서울 대학생이 되어서 교복 입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인생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함께 하셔서 서울대학교 학생답게 인도해주시고 그럴만한 실력도 채워주시는 것이 아주 경이로워진 것입니다. 예수님의 또 다른 이름에 담긴 경이로운 비밀을 온전히 깨닫고 그 이름대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5/27/2021
저도 예수님 이름에 관해서 성경에서 발견한 것이 있어서 간단히 나누고 싶습니다 ^^ :
하나님이 자기 이름을 "여호와"로 처음 가르쳐준 것은 출애굽기 3:14이지만, 아직 아무도 하나님 이름을 묻지도 않았고, 또 하나님도 사람에게 자기 이름을 알려주신 적이 없는 때에, 사람들이 그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부분이 창세기 4:26에 나옵니다: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가인이 아벨을 죽인 후, 동철로 각양 날카로운 기계를(무기) 만들고 강력한 도시국가를 건설해 나갈 때에 갓난쟁이 셋의 아들 에노스가 태어나, 이들의 자손들은 매순간 목숨에 위협을 느끼며 살았고,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 (예수/예슈아!)을 애타게 부르짖었던 것이죠.
그 결과 놀랍게도, 하나님이 아직 가르쳐 주시지도 않고, 또 아직 아버지의 이름으로 아들이 오시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여호와의 이름(예슈아)를 부르고 있었던 것이죠.
... 혹시 제가 나누고자 했던 것이 은혜가 안된다면 너그럽게 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