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사체험과 십자가 구원
이 시리즈를 시작하는 첫 시간에 성경 66권을 십초 만에 통독하는 비결을 말씀드렸습니다. 성경의 첫 구절인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와 마지막 구절인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찌어다”(계22:21)를 연결해 보면 됩니다. 요컨대 모든 사람이 예수를 믿어 구원 얻는 것이 창조주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전체가 말하는 바는 모든 사람에게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 외에 소망이 없고 구원의 길도 없다는 것입니다.
필연적으로 타 종교인이나 일반 무신론자들로부터 상당한 반발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구원을 받아야만 할 인간의 상태에 대한 해석이 서로 전혀 다르기 때문에 그런 차이가 생긴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구원이 필요한 절대적 전제가 둘은 서로 완전히 다릅니다. 그 첫째 전제는 인간은 자기 죄를 스스로 씻을 수 있고 또 고치며 거룩해져서 하나님의 심판대에서 합격점수를 받을 자신이 있다는 입장이 있습니다. 둘째는 그와 반대로 도저히 그럴 수 없다고 겸손히 인정하는 입장입니다.
구원의 전제가 다르니 구원의 방법도 각기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먼저 스스로 의로워질 수 있다면, 종교들마다 의로워지는 방식을 조금씩 다르게 제시하지만, 어쨌든 자기에게 맞는 것을 택하여 그대로 순종 실천하면 됩니다. 반면에 인간은 죽어도 스스로 의로워질 수 없다면 하나님이 당신의 독생자를 죄인을 구원하러 이 땅에 보내시고 십자가에 대신 죽게 하신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임으로써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기독교만이 구원의 전제가 다른 모든 종교와 다르기 때문에 구원의 방안도 달라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독교에 대해 예수 십자가가 왜 유일한 길이냐고 반박하지 말고 과연 내가 하나님의 기준에 합격해 스스로 의로워질 가능성이 있는지부터 따져보는 것이 합리적인 태도일 것입니다.
잠시 죽었다가 다시 소생하는 임사체험을 하는 자들이 간혹 있습니다. 그런 분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사항이 하나 있습니다. 자신의 일생이 순간적으로 영화 필름처럼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데 생생하게 그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심사받는 모습이 인간에게 그런 방식으로 나타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만약에 한 인간의 평생을 그 행동과 말은 물론 생각까지 완전히 찍을 수 있는 촬영기가 있고, 하나님이라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니까, 그 영상을 하나님과 함께 본다고 가정해보십시오. 과연 끝까지 떳떳하게 다 볼 수 있을까요? 끝까지 흔들림 없이 하나님과 함께 볼 자신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기에게 합당한 종교를 선택해 믿으면 됩니다. 그 종교로 정말로 구원 받을지 못할지 모르지만 어쨌든 본인의 주관 철학 소신에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에 그런 영상을 하나님과 함께라면 단 일분도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서 못 보겠다고 인정하는 자도 있습니다. 그럼 그 큰 죄 값을 당신께서 십자가에 다 감당하고 죽으신 예수님의 은혜를 겸손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종교끼리 그 내용과 의식과 계명들을 서로 비교 대조하며 우열을 따져서 기독교가 베스트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의 전제가 다르면 구원의 방법도 달라집니다. 기독교만이 다른 종교와 그 전제가 전혀 다르니 구원의 방법도 오직 하나 예수님의 십자가뿐인 것입니다.
아직도 예수님의 십자가가 잘 이해되지 않고 믿어지지 않는 자라면 정말로 심각하게 내 일생의 영상이 어떻게 찍힐지 고민해 보시기 바랍니다. 반면에 이미 예수를 믿은 신자라면 단 일분도 부끄러워서 내 영상을 하나님과 함께 볼 수 없었던 처지였는데도 아무런 조건과 공적 없이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준 예수 십자가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 다시 한 번 감사하고 주님 안에서 항상 기쁨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6/16/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