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록 1 - 구원으로 예정이 되어 있다면 구태여 전도할 필요가 있는가?

 

이 주제에 대해서 필자가 오래 전(2003년 11월)에 쓴 글을 아래에 인용하겠습니다.

 

예정 교리를 이야기 할 때면 마지막으로 나오는 질문이자 누구나 갖는 의문입니다. 신앙 상에 어떤 의문이 떠오르게 되는 배경을 가만히 살펴보면 거의 대부분이 선입관에 묶여 자기 중심의 제한된 사고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는 우리의 제한된 시야를 조금만 넓히거나 고정적 사고 패턴을 한 번 바꾸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너무 어렵게 생각할 것이 없습니다. 상대의 입장에서 한 번 생각해보라는 의미입니다.

 

사고를 바꾸어 보라

 

이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 구원 받기로 예정 되어 있는 자의 입장에서 한 번 접근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정이란 다른 말로 하면 누가 구원을 받을지 아무도 모른다는 뜻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의 전적 주권에 속한 것으로 구원 받을 자를 포함해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를 반대로 가정해서 혹시라도 구원 받을 본인이나 제 삼자가 확실히 알 수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예정된 자는 “이왕에 구원 받을 것이 확실한데”, 또 선택 받지 못한 자는 “어차피 지옥에 갈 것인데”라는 마음이 필연적으로 들 것입니다. 전자는 안심하고 제 멋대로 방탕에 빠지고 후자는 미리부터 자포자기 해버릴 것입니다.

 

혹시라도 선택 받았으니 그 은혜에 감사해서 더 열심히 착하게 살거나, 선택 받지 않았기에 지옥 가는 결과는 나중 문제로 삼고 그래도 한 번뿐인 인생인데 더 성실히 살 수 있지 않겠나 기대하는 것은 참으로 순진한 생각입니다. 구약성경이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에게 선택된 것을 너무 과신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일이라고는 배도와 타락뿐이었습니다. “내 백성 중에서 말하기를 화가 우리에게 미치지 아니하며 임하지 아니하리라” 했지만 모든 죄인은 칼에 죽었습니다.(암9:10) 누가 선택되었는지 아무도 모르는 예정에 의한 구원이라야만 인간을 인간답게 살게 만들 수 있습니다. 또 그 선택 안에 들게 된 것을 진심으로 귀한 은혜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예정은 누구를 구원하고 누구는 탈락시키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구원 받을 사람으로 하여금 어떻게 하면 참 신자답게 더 풍성하게 살게 할 것인가에 더 초점이 있습니다. 예정을 단지 구원 받을 수 있는 가능성에만 포커스를 맞추어 우리의 사고 폭을 제한하면 하나님이 결국 구원할 것인데 꼭 인간이 따로 전도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의문만 발생합니다. 이미 운명이 정해져 있다는 선입관을 버리고 하나님과 구원 받을 자의 입장에서 함께 생각하지 않으면 예정에 숨겨져 있는 하나님의 참 은혜를 제대로 알 수 없습니다.

 

인간을 들어 쓰시는 하나님

 

동일한 맥락에서 만약 인간의 전도 없이도 구원이 된다고 가정해 봅시다. 예수님의 사역과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관한 복음을 전해 듣지 않고도 구원 얻는 것이 가능 하려면 어떻게 되어야 합니까? 어느날 갑자기 “뿅”하고 깨우침이 있거나 하나님이 강제적으로 겁을 주어 믿게 하거나 둘 중 하나여야 합니다. 환각의 하나님이거나 폭군 예수님이 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었습니다. 그리고 코에 생기를 불어 넣어 생령이 되게 했습니다. 하나님 대신에 이 땅을 다스리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창1:26)

 

또 다시 만약 하나님이 인간을 쓰지 않고 직접 이 땅을 다스린다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겠습니까?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 두려워서라도 맹목적으로 복종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인간 간에 참다운 사랑의 인격적 교제가 생길 수 없습니다. 나아가 인간이 구태여 이 땅을 아름답게 보존하려고 스스로 노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가만히 앉아 그저 시키는 일만 하면 됩니다. 인간은 노예요 하나님은 독재자가 됩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당신의 형상대로 만드신 이유는 당신의 일을 인간을 통해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전도도 하나님이 구원을 주기로 예정한 사람에게 성령으로 간섭하셔서 하시지만 실제적으로는 반드시 사람의 손을 통해서 이뤄집니다. 바울 사도는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를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고전1:21)라고 했습니다. 인간을 부려먹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자신과 기쁨으로 자원하여 순종하는 관계를 맺기를 진정으로 원하십니다. 나아가 연약하고 부족한 우리를 감히 “하나님의 동역자”(고전3:9)로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야 했던 이유도 동일합니다. 아무 제자를 두지 않고 혼자서 죽었다 부활했다면 십자가는 한 마술사의 해프닝으로 그쳤을 것입니다. 인간으로 오셔서 이 땅에 12명의 제자들을 두고 복음의 진리를 3년간 미리 가르쳐서 인류의 구속 사역을 성취하셨습니다. 예수님도 말의 지혜로는 하지 않으시되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제자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제자들 또한 다가오는 모든 세대에 그 복음을 말로 전했기 때문에 오늘 날의 우리가 있게 된 것입니다.

 

성령과 전도

 

그렇지만 예수님의 제자들도 성령의 역사가 먼저 있은 후에야 전도의 효력이 발생할 수 있었습니다. 막상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에 전부 배반했으며 오순절 날 성령을 받고 난 후에야 제대로 믿게 되었습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요16:13,14) 성령의 간섭으로 비로소 자기 스승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에 관해 지난 3년간 가르침을 받은 말씀의 의미를 제대로 알게 되었으며 초대 전도자로 쓰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하나님이 당신이 선택한 자를 직접 구원하시지만 여전히 구원 받은 사람의 말을 매개체로 복음을 전하게 하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신자에게 성령 세례로 권능을 덧입혀 주어 땅 끝까지 전도하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자기들의 전도 사역을 설명하면서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하나님 한 분 뿐이니라”(고전2:6,7)고 했습니다. 구원의 전 과정이 하나님의 주권 하에 이뤄지지만 심고 물을 주는 이는 반드시 따로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역할을 인간에게 맡긴 것입니다.

 

오순절 날 베드로의 설교로 삼 천명이 한꺼번에 구원 받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불의 혀 같이 임한 성령님이 무식한 어부로 담대하게 설교하고 또 듣는 자의 마음 문이 열리도록 간섭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인간의 말에 의한 복음 전달과 하나님의 성령의 간섭이 동시에 일어나야만 구원이 가능합니다. 십자가 보혈의 공로 외는 그 어떤 것으로도 구원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주님의 죽음과 부활의 의미가 말씀으로 함께 전해져야 합니다. 베드로의 설교 자체가 청중에게 큰 감동을 줄만큼 문학적 종교적으로 잘 준비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셨다 사흘 만에 다시 사셨다는 메시지가 청중의 가슴을 파고 든 것입니다. 십자가 진리가 설명되어지지 않고는 구원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듣지 않고는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을 주장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따라서 전도하기 전과 전도 중에 나아가 전도를 마친 후에도 반드시 그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계속해서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베드로가 수 천명을 상대로 설교할 때에 함께 있던 120여명의 다른 제자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겠습니까? 틀림 없이 기도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일하시되 복음의 열정에 가득 차 기도하는 자를 쓰십니다. 예정은 바로 그런 성령의 권능에 사로 잡힌 자를 통해 구체적으로 실현되고 완성되는 것입니다.

 

복이 통과하는 파이프

 

구원이 예정되어 있다 할지라도 사람이 전도자의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데는 대체적으로 별다른 반대가 없지만 전도의 시기에 관해선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결국 반드시 구원할 것이라면 꼭 지금 내가 급하게 전도해야 하는지에 관해 확신이 없습니다. 사람이 언제 죽을 지 모르고 당장 내일 예수님이 재림한다 해도 하나님이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행13:48) 그 전에 다 믿게 해 주실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맞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회심한 강도처럼 구원이 예비 된 자는 죽기 직전에라도 믿게 됩니다. 서두에 말씀 드린 대로 구원과 예정에 관해 좀더 넓은 시야로 생각하셔야 합니다. 기독교의 구원은 단지 죽은 후 지옥 가는 심판만 면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부터 천국의 삶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다른 모든 종교가 죽어봐야 자신의 운명이 결정되지만 기독교만은 이 땅에서부터 구원의 확신을 갖고 지금 당장 죽어도 천국 갈 자신이 있다는 것이 전혀 다릅니다. 독생자를 믿지 않는 자는 믿지 않는 그것으로 이미 심판을 받은 것이며 대신에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입니다.(요3:18)

 

따라서 기독교 구원에는 "멸망치 않고”와 "영생을 얻게” 하는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소극적으로는 죽고 난 후에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면제되는 부분과 적극적으로 이 땅에서부터 영생을 누리게 하는 부분입니다. 성경은 영생을 정의하기를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요17:3)이라고 했습니다. 독생자를 죽이시기까지 하면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뜻을 제대로 알아 주님께 자기의 전 생애를 의탁하면 그 이후로는 주님의 완전한 인도와 보호 아래 살게 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면 이 땅에서부터 천국을 차지합니다.

 

구원의 성격이 그렇다면 전도에서도 이 두 가지 측면이 다 강조되어야 합니다. 전도를 하나님이 다 예정해 놓은 일을 마치 인간이 대신하는 것으로 착각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천국 갈 자 미리 정해 놓았다면 죄송한 표현이지만 그 머리 숫자는 어차피 하나님이 채울 것인데 전도하든 안 하든 관계가 없지 않는가라는 의심은 구원의 두 측면 중 멸망치 않는 부분만 생각했기 때문에 생깁니다.

 

천국 가는가 못 가는가 구원해야 할 인원수는 하나님이 반드시 예정한대로 채우십니다. 심판의 면제는 하나님 만의 몫인 것은 틀림 없으며 인간이 그 일을 대신 할 수는 없습니다. 전도는 이미 구원이 예정 된 자를 인간이 중간에 들어서 믿게 만드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을 이 땅에서부터 천국의 삶을 살게 하는 데 더 큰 목적이 있습니다.

 

비유하자면 구원이 예정된 자들은 디즈니랜드 입장권을 다 미리 배부 받은 자들이라 할 수 있으며 그 중에 먼저 믿은 자들은 디즈니랜드 안에 이미 들어 와 있는 자입니다. 아직 믿지 못한 자들도 입장권을 갖고 있어 언젠가는 들어 올 것입니다만 저녁 문 닫을 시간 임박해 들어오면 아무 재미가 없습니다. 가능한 아침 일찍부터 입장해 재미있는 것부터 열심히 타야 디즈니랜드의 참 맛을 알게 됩니다. 또 먼저 와서 신나게 이것 저것 타 본 사람은 밖에 있는 사람들 중에 누가 입장권을 갖고 있는지 모르지만 자꾸 들어와보라고 권하지 않겠습니까? 모르니까 더 아무나 붙들고 권해야 합니다. 한 시라도 빨리 와야 재미있는 것을 더 많이 오래 탈 수 있으니 지금 당장 오라고 입이 닳도록 선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구원 받은 확신이 있는 자, 예수를 믿기 전과 믿은 후의 삶과 인생이 확연하게 변화된 자, 예수 믿기 전의 삶이 얼마나 비참하며 헛되고도 추한 것이었다는 것을 확신하는 자, 그래서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가기를 죽기 보다 싫어하는 자, 현재 주님과 동행하고 교제하며 그 분의 인도 안에서 그 분 은혜를 날마다 순간마다 체험하는 자, 그래서 예수 밖에 있는 자들이 얼마나 불쌍하고 궁핍한지 잘 알아 그들의 삶과 인생이 애처롭고 안타까워 못 견디는 자, 제대로 된 신자라면 스스로 더 큰 열정을 가지고 불신자들을 예수 안으로 초대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전도란 먹을 것이 어디 있는지 발견한 거지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거지들에게 가서 먹을 것이 어디 있는지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영생과 구원을 주는 것은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지만 어디에 참 생명이 있는지는 외쳐야 합니다. 저들의 영혼이 사탄의 멍에 아래 묶여 있고 나면서부터 영적인 봉사가 되어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겨 있기에 더더욱 외쳐야 합니다.

 

전도가 하나님의 예정에 힘을 보태거나 변경시키는 작업이 아닙니다. 전도 때문에 구원이 주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전도는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불신자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일상생활 가운데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고 어떤 환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일 때에 우리가 믿는 예수님에 대해 호기심을 갖게 하고 그들도 믿고 싶은 소망이 생기게 만들어야 합니다. 예정과 전도는 서로 모순되거나 상충되는 부분이 어디에도 없습니다.

 

다시 말해 신자가 현재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자신의 삶이 기쁨이 넘치고 있다면 아직도 그렇게 살지 못하는 사람에게 받은 복을 나눠주는 것이 전도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믿는 자들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으로 삼아 주셨을 때도 그는 단지 복이 통과하는 파이프로 부름 받았습니다. 혼자 심판을 면제 받아 천국 가는 것만 만족하는 자로 부르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의 신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하나님의 자녀를 통해서만 다른 사람에게 전해집니다.

 

부끄럽지 않은 구원

 

신자는 죽으면 따로 심판대가 없습니다. 이미 심판을 면제 받았기 때문입니다. 대신에 이 땅에서 얼마나 신자답게 살았는가를 가지고 상급이 정해집니다. 우선 벌은 없고 상만 있습니다. 또 인간 세상에서 이뤄지는 심사와는 성격이 다릅니다. 얼마나 착하게 살았는가 혹은 교회에 봉사를 많이 했는가를 따져서 선행의 공적에 수치적으로 비례해 경품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천국에 가면 신자는 부끄러운 구원인가 부끄럽지 않은 구원인가로 나눠집니다. 이 땅에서부터 정말 주님을 더욱 깊이 알고 체험하며 그 분의 뜻에 순종하는 온전한 관계를 맺었다면 그 관계가 천국에 가도 지속되며 완전하고도 영화로운 구원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말하자면 천국에서 주님이 디즈니랜드에서 무슨 기구를 얼마나 재미있게 탔느냐고 물을 때에 마지막 마칠 때쯤에 마지못해 들어 온 자는 주님과 아무 할 이야기가 없겠지만 아침부터 가서 신나게 논 자는 얼마나 할 이야기가 많겠습니까? 바로 그것이 신자가 받을 천국의 면류관이자 상급입니다.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이니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고전3:11-15) 그래서 바울 사도는 당장이라도 천국 가는 것이 더욱 좋겠지만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 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게 함이라”(고후5:2,3)고 고백했습니다.

 

부끄럽지 않은 구원을 얻기 위해선 전도해야 합니다. 혹시라도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천국가면 이곳 교회에서 전도왕 뽑듯이 누가 얼마나 많이 전도했는지 숫자로 비교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구원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뤄지는 그 분만의 주권적 역사입니다. 신자가 아무리 복음을 열심히 전했어도 하나님 당신이 차지할 영광을 가로챌 수 없습니다.

 

전도를 많이 해야 상급을 많이 받는다는 것은 전도한 사람의 숫자가 문제가 아니라 전도하려는 그 중심을 보시는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귀해 나눠주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심경을 기쁘게 받으십니다. 주님과의 관계가 은혜 가운데 아름답고도 능력 있게 이뤄지고 있다면 전도하지 말아라 해도 전도하게 됩니다. 신자라면 잃어버린 자기 자녀들을 향한 하나님의 안타까운 마음을 진심으로 헤아려보고 그 분의 일에 과연 자신이 얼마나 진정으로 동참했는가를 따져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정과 상관없이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신자가 전도해야 할 마지막이자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한 영혼을 되찾으면 천국에서 잔치가 벌어지듯이 모든 신앙 생활 가운데 탕자가 되돌아와 변화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 보는 것만큼 신자의 큰 축복이 없기 때문입니다. 인생에 있어 가장 큰 성공은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며 그것도 주님의 사랑으로 남을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부인하고 세상에서 향방 없는 달음질을 하고 허공을 치는 듯 살아온 불신자 한 명이 진정으로 회심하고 예수님 앞에 완전히 무릎 꿇는 사건 만큼 하나님에게도 큰 일은 없습니다. 완악하고 교만했던 어떤 영혼이 주님의 십자가 사랑 앞에 완전히 녹아져 내려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르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일이 자기로 인해 가능하게 되는 것만큼 한 인생으로 고귀하고 가치 있는 일은 없습니다. 또 전도로 맺어진 회심 이후 성도간의 교제가 계속해서 믿음 안에서 서로 권면하고 도전하며 참된 사랑의 공동체를 이뤄나갈 때 바로 그곳이 하나님 나라가 됩니다. 신자의 믿음과 품성과 인생도 그에 따라 성숙되고 거룩해집니다. 천국에서의 면류관은 나중 문제이며 신자는 전도를 통해 이 땅에서부터 천국을 맛보고 영생을 누리게 됩니다.

 

신자는 복이 통과하는 파이프가 되어야 합니다. 예정으로 구원이 확보되었다고 전도하지 않으면 복이 통과하지 못하고 신자의 속에 고입니다. 흐르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 곳은 항상 썩기 마련입니다.

 

구원은 예정된 자를 천국에 보내는 것만 목적이 아니라 신자를 하나님의 거룩한 일에 동역자로 초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각 신자에게 책임지고 맡아서 함께 섬기고 자라나갈 영혼을 알게 모르게 자꾸 부쳐 주십니다. 가장 가까이는 자기 자녀부터 멀게는 길 가다 우연히 만난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까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신자는 전 생애에 걸쳐 그들의 영혼을 예수님의 심장을 가지고 섬겨야 합니다. 가장 먼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예정이란 자기 자녀도 하나님에게 선택되었는지 안 되었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럼 어차피 하나님 하실 일이니 손 놓고 가만히 있어야 합니까? 반대로 자기 자녀는 열심히 반 강제적으로라도 예수님께 인도하면서 다른 사람은 이미 예정되어 있다는 핑계로 가만 두고 보아도 되는 것입니까? 이것 하나 만으로도 이 질문의 답이 되지 않습니까?

 

5/13/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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