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 쉬운 예정론의 연재를 마치면서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하나님을 도와주려는 신자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분이어야만 한다고 미리 확정적으로 판단한 후에 자신이 정해놓은 형상에 하나님이 조금이라도 모순 상충되어 보이면 성경의 진술까지 본문의 뜻과 상관없이 자기 기준에 맞게끔 해석해버리는 것입니다. 세상 모든 존재가 당신의 피조물이므로 그들로부터 도움은커녕 털끝만큼도 영향을 받지 않고 자존하시는 하나님인데도 인간이 시건방지게도 하나님 역할을 제대로 하게끔 도운 꼴이 됩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예정론에 대한 반박입니다. 사람이 나기 전부터 그의 의사나 행동과 전혀 무관하게 구원과 심판으로 미리 나눈다는 것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의 성품에 위배된다고 합니다. 그럼 또 불공평하고 독선적이며 배타적이고 심지어 비논리적인 하나님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절대 그럴 리 없으며 성경을 잘못 해석한 탓이라고 반박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의 자의에 따라 믿기로 결단만 하면 구원을 주신다고 전제한 후에 모든 성경말씀을 그에 맞게끔 해석합니다. 성경 본문과 성경 전체가 말하는 바와 상관없이 자기들 주장을 변호하기 위해서 오역하고 있다고는 전혀 생각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에 합당하게 해석한 것이므로 더 타당한 해석이라고 철석같이 믿습니다. 인간이 감히 하나님을 도와주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깨닫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누구도 심판으로 미리 예정한 적이 없습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로 모든 인간은 죽어 마땅한 심판의 자리에 있었고 지금도 그 자리에 있고 앞으로도 그 자리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지금 당장 전 인류를 멸망시켜도 인간은 단 한마디의 항변은커녕 핑계 변명도 댈 수 없습니다.

 

그분의 택하심은 오직 구원할 자에게만 해당되며 그렇다고 공짜 선물의 특혜를 준 것이 아닙니다. 그들로 하여금 전도의 미련한 것을 통해 아직 심판의 자리에 있는 자들도 너무나 사랑하기에 구원으로 초대하라는 소명을 맡기려는 뜻입니다. 비천 한 자를 택해 비천한 자들에게, 미련한 자를 택해 미련한 자들에게, 심지어 살인을 범한 죄인마저 택해 같은 죄에 빠진 자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알게 해주려는 것이 예정입니다. 예정이야말로 하나님이 당신의 사랑을 실현하는 당신만의 완벽한 방식입니다. 

 

이해하기 쉽게 말해 모든 신자들로 베드로나 바울 같은 삶을 살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들처럼 주님이 가신 길을 따라서 십자가의 순교의 자리에까지 이끄는 것이 예정의 본질입니다. 만약 예정론의 본질이 이것이라고 말하면 아무도 그에 대해서 불공평하다 독선적이다 일방적이라고 불평하지 못할 것입니다. 바울과 베드로 같은 위대한 사도들을 순교로 내모는 사랑이 없는 비정한 하나님(?)이라고 원망하는 것은 가능해도 말입니다.

 

누구라도 사도들 특별히 바울의 입장이 되어보면 자기는 오직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에 따른 택하심에 의해 구원 받았다는 고백을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다른 구원은 아예 생각지도 못할 것입니다. 바울 서신서에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사도(성도)”라는 표현이 자주 나오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먼저 있고 자기는 그에 대답만 했다는 뜻입니다. 알다시피 결코 그는 믿기로 먼저 결단하지 않았습니다. 만에 하나 그래서 성령이 역사해주었다면 “하나님이 나의 믿음을 받아준 사도”라고 표현했을 것입니다.

 

시간적으로 미리 정했다는 예정(豫定)이라는 용어는 시간 자체를 창조하셨기에 그것에 전혀 구애 받지 않는 하나님에겐 전혀 해당되지 않습니다. 그분은 당신의 영원한 현재적인 의지 안에서 당신의 일을 맡길 자에게 구원주실 뿐입니다. 시간에 제한 받는 바울의 입장에서 마찬가지로 시간에 제한 받는 인간에게 다른 방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으니까 예정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무엇이든 예지하실 수 있는 분이기에 믿으려고 결단할 자를 예지하여 예정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분의 사랑의 속성 하나에 묶인 결과입니다. 인간이 그분을 무리하게 도우려하다가 또 다시 그분의 시간에 대한 초월성을 무시해버리는 해석이 되었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구원으로 선택하지 않은 자를 하나님이 적극적으로 미워하기에 강제적으로 멸망에 밀어 넣은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의 모든 사역은 심판이 아니라 구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렘29:11) 그분의 정죄를 초래하는 것은 당신께 순종하기를 기뻐하지 않는 인간 본연의 악한 본성과 그에 따른 완악함이 원인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초점이 구원에 있다면 그에 반응하는 인간의 초점도 마땅히 심판보다 구원에다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구원 받은 자, 그것도 자신은 절망에 빠져 전혀 소망이 없었다고 절감한 자만이 그 은혜를 실감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타종교인과 불신자들에겐 아예 말도 안 되는 내용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고 말씀하신 그대로 입니다.

 

심판보다 구원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는 뜻은 모든 신앙상의 판단 근거를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두라는 것입니다. 예정론을 이해하든 못하든 그리스도 때문에, 그분의 십자가 대속의 의에 자신을 온전히 내어드릴 때만 구원 받습니다. 바꿔 말해 인간이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지 상관없이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무한하신 사랑이 구원의 유일한 근거라는 것입니다. 그분의 사랑의 성품에 무리한 성경해석을 하면서까지 인간이 보태주어야 할 여지나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성령의 역사로 거듭남이 구원의 전제라는 면에서도 구원은 예정입니다. 인간의 선한 양심이나 종교심만으로 충분히 믿을 수 있다고 하면 구태여 거듭날 필요가 없습니다. 거듭났다(요3:3)는 헬라 원어에는 “위로부터” 거듭났다는 뜻도 있습니다. 인간이 전적으로 타락했기에 하나님 쪽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당신의 전적인 은혜로 당신께서 구원을 베풀 수밖에 없다는 것이 예정입니다.

 

거기다 십자가의 진리를 깨닫고 받아들이는 일이 전적으로 인간에게 맡겨졌다면 사람들 사이에 영적수준에서 우열의 차이가 생깁니다. 아무리 믿음의 차원이라 해도 우수한 사람만 구원해주는 꼴이 됩니다. 그럼 또 이왕에 갖고 있던 인간의 종교적 양심 위에 하나님의 더 좋은 것이 보태어진 것 즉, 수정된 것뿐이지 완전히 새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모두 다 죽게 마련인 가운데 일부이기 하지만 구원할 자를 택하여 전적인 은혜로 구원을 선물로 주셨다면 그것이 사랑입니까 아닙니까? 구원 받은 자에겐 엄청난 사랑입니다. 그러니까 엄청나게 중요한 사명을 맡기는 것입니다. 반대로 구원에서 누락된 자에게는 공의에 위배되는 것입니까? 처음부터 그는 죽게 마련인데다 실제로도 끝까지 완악하게 십자가 은혜를 외면 대적했으니까 처음 운명대로 사망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전혀 줄지 않고 심판 받을 자가 심판 받았으니 오히려 완벽하게 실현된 것입니다.

 

문제는 지금까지 제가 설명한 내용에 대해서도 또 다시 성경의 일부구절을 근거로 말꼬리 잡는 식의 반박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지금껏 예정을 찬성 또는 반대하는 두 진영이 계속해서 진행해온 진흙탕(?) 싸움이 바로 그것입니다. 주로 서신서에 진술된 말씀만 붙들고 교리적 신학적 논쟁에만 집중해왔습니다.

 

예정에 대한 교리나 신학을 안다고 구원받는 것이 아니기에 저는 성경인물들이 실제로 어떻게 구원 받았는지에 집중해서 살펴봤습니다. 성경인물들이 예정으로 구원 받았으면 예정이 옳은 것이라는 너무나 단순한 진리에 근거해서 말입니다. 한 분 하나님이 여러 방식의 구원의 길을 마련해 인간들로 혼동하게 만들 분은 아니지 않습니까? 살펴본 결과 신구약 모든 인물들이 한 결 같이 예정에 의해 구원 받았습니다. 거기다 예수님이 예정에 대해서 직접 가르쳤습니다. 그럼 더 이상 논의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그래도 의심되면 자신의 구원이 과연 어떠했는지 진지하게 되돌아보면 됩니다.

 

저의 경우도 예수를 믿으려는 것은 꿈도 꾸지 않았고 도리어 격렬한 안티크리스천이었습니다. 결국에는 예수를 믿으려고 제 스스로 판단하고 결단했으나 거기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회상해보면 하나님이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택하여서 구원을 선물로 주셨다는 고백밖에 할 것이 없습니다. 예정론에 대해서 의심 불만이 있을 수 없고 그에 대해 논의한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을 도와주는 것을 넘어서 불경한 일이라고까지 여겨집니다. 하나님이 도무지 자격이 없는 이런 나를 택하여 주었으니까 구원의 은혜는 더욱 큰 은혜로 다가왔고 더욱 큰 헌신을 결단하게 되었고 더욱 큰 겸손으로 성실히 순종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교리나 신학에 능하다고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으로 거듭나서 예수님을 자신의 온전한 주인으로 모시고 그렇게 살아가는 자만이 구원을 얻습니다. 그렇다면 예정론은 자신의 구원이 예정이었다고 고백하는 자에게만 유효하고 또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예정을 믿지 못하는 자에게 억지로 가르치고 설득시킨다고 해서 구원과는 아무 상관이 없으니까 말입니다. 따라서 신학자나 목사들의 결론 없고 소득 없는 예정론 논쟁에 더 이상 신자들까지 혼란스럽게 만들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혹시라도 자신의 예정에 확신이 생기지 않거나 다른 이가 예정에 대해 반발하면 다음 세 가지 질문을 던져보십시오. 첫째, 신구약 성경의 인물들의 구원이 예정이었는가 아닌가? 둘째, 만약 예정으로 구원 받았다고 판단되면 그들이 자유의지로 스스로 믿기로 결단한 것과 하나님의 예정 사이에 조금이라도 모순과 상충이 있었는가? 셋째 자기 자신의 구원 경험이 예정이었는지 아닌지? 그리고 그 구원 여정에 자유의지가 충분히 발휘되었는가?

 

요컨대 인간을 자기 뜻대로 행동하도록 놓아두고도 당신의 택하심을 한 치의 차질 없이 실현시키는 하나님의 광대하신 권능과 은혜를 실감할 수 있는지 따져보라는 것입니다. 알기 쉬운 예정론의 연재를 여전히 아쉬움이 많은 채 마무리하면서 예수님의 말씀 하나만 살펴보겠습니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9:23) 예수님이 당신께서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날 것을 예고한 후에 제자들더러도 순교를 각오하라고 당부하신 말씀입니다. 자기를 위해 생명을 아끼면 잃지만 당신을 위해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합니다.

 

그런데 만약 날마다 그러지 못하면 날마다 구원이 취소되는 것입니까? 그래서 어떤 날은 구원 받았지만 어떤 날은 구원 받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는 것입니까? 그러면 이 세상 어느 누구도 구원받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 죽음의 효력이 그럴 정도로 미약하다고 말해선 절대 안 됩니다. 구원이 인간의 결단만으로 가능하고 또 그 결단이 무너졌다고 구원을 취소할 양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이유도 필요도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십자가의 영단번의 구원의 권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아는 자에게 예정은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정의 은혜가 너무 커서 피 흘리기까지 세상 죄악과 흑암의 세력과 당당히 맞서 싸워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동역자로 평생 충성하기에 바빠서 신학과 교리 논쟁에 빠질 틈도 없습니다.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모든 분들도 예정에 전혀 신경 쓰지 마시고 자신의 구원의 은혜에 더욱 감사하고 그 은혜가 정말로 귀하다면 주님이 명하신 일에만 충성 헌신하시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샬롬!

 

7/8/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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